■ 아빠에게 듣는 4.19혁명 이야기
■ 아빠에게 듣는 4.19혁명 이야기
  • 허정균 기자
  • 승인 2022.04.22 08:16
  • 호수 10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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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두 열사가 계심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거라

이 글은 서천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이 보내온 글입니다.
 

▲노희두 열사
▲노희두 열사

아빠가 아침 카톡으로 경남 마산에서 열리는 4.19혁명 62돌 기념식과 김주열 열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4.19와 김주열 열사에 관해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지금은 학교 가는 시간이니 하교 때 설명해 주신다고 하십니다.

오후 4시 운동장에서 기다리시던 아빠가 친구 현비와 나를 데리고 정문 쪽을 향하십니다. ‘노희두 위령비앞에서 묵념을 하라고 하십니다. 가지런히 손을 모았습니다. 그런 후 4.19 혁명과 노희두 열사 위령비가 왜 우리 학교 교정에 있는지, 아침에 약속한 마산 김주열 열사에 관한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지금부터 62년 전 1960315일 대통령 선거에 부정이 있었단다. 훗날 이를 3.15 부정선거라고 한다. 부정선거란 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투표나 개표가 행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시민들과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불법선거를 규탄하며 선거무효를 외쳤다. 419일 그 날 아침, 그 외침의 선두에 동국대학교 법학과 3학년이셨던 노희두 열사가 서 계셨다. 죽음을 무릅쓰고 경무대(현 청와대)를 향하던 열사께서 경찰의 총에 맞아 죽임을 당하셨다.

왜 그 분의 위령비가 서천초등학교 교정에 있는가? 열사의 고향은 기산면 두남리이셨고 학교는 서천초등학교와 서천중학교를 다니셨다. 그래서 그 어른의 위령비를 이곳에 모셨다. 위령비란 죽은 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비을 말한다. 그리고 그 비석을 바라보면서 민주주의를 이루고자 희생하신 그 분들의 고귀하신 뜻을 마음에 새기라는 것이다. 매년 419일 날에는 동국대학교 동문 분들과 지역시민들 그리고 학생들이 이곳에 모여 열사를 추모하고 그 뜻을 기리는 추념식을 한다.

아참! 하교길에 들려주기로 한 경남 마산 4.19 혁명 이야기를 마저 하자꾸나. 마산에서도 3.15부정선거에 저항하는 시민들과 학생들이 거리로 나가 선거를 다시 하라고 외쳤다. 그 중심에 김주열 열사가 있었다. 그 분은 1943107일 전북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에서 출생하여 1960314일 마산 상업고등학교 합격자 발표를 보기 위해 마산으로 갔다. 315일 부정선거로 인해 부정선거 규탄시위가 연일 있었고 17세 소년 김주열이 행방불명이 됐다. 그는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죽었다. 경찰이 시체에 돌을 매달아 떠오르지 못하게 하여 마산앞 바다에 수장시켰다. 시신이 부패하여 한 달여 만인 411일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로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다. 413일 김주열 열사의 시체는 마산을 출발하여 414일 고향인 남원시 옹정리 선산에 안장되었다. 이후 서울 4.19 민주 묘지와 마산 3.15 민주 묘지에 가묘를 만들었다.

사랑하는 딸아! 아빠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 고마워. 서천초등학교의 대선배님으로 노희두 열사가 계심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거라. 그리고 그 열사의 뜻을 이어받는 자랑스런 후배가 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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