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어버이날에
■ 모시장터 / 어버이날에
  • 권기복 칼럼위원
  • 승인 2022.05.13 10:01
  • 호수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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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우리 왔어요.”

! 누이들이 웬일이야.”

고추 심는다고 해서 함께 하려고요.”

고추 몇 포기 심는 거야 우리 내외만 해도 금방인데…….”

에이, 고추 심는 거는 핑계이고, 오빠 보고 싶어서 왔어요. 내일이 마침 어버이날이잖아요.”

지난 토요일, 점심때가 다 될 무렵에 둘째와 셋째 누이가 농장 안으로 들어왔다. 어쩌다 보니, 우리 집과 두 누이 집안을 통틀어 내가 가장 윗사람이 된 상태였다. 그렇다 치더라도 두 누이도 50대 중후반에 접어들었고, 집에는 아이들이 있다.

내일 아침에 누이들도 조카들에게 카네이션 선물을 받아야 하잖아.”

괜찮아요. 내일 저녁에 받으면 되지요.”

조카들이 서운하겠다. 그러다가 외삼촌 미워하면 어쩌냐?”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로 그럴 일 없어요.”

나는 고추 심을 밭 자리로 갔다. 두 달 전부터 퇴비와 석회, 거름물 등을 넣고 땅심을 돋구고자 애써온 곳이었다. 그러나 정작 고추 심을 때가 되어서 두둑조차 만들지 못하였다. 십 리 정도 떨어진 큰 밭자리 공사 때문이었다. 삼천 평 규모의 밭을 푸른 잔디밭으로 꾸민다고 고생하다가 각종 나무 묘목을 빼곡하게 심었다. 그런데 교감이 되면서 평일 밤낮은 물론 휴일조차도 짬을 내기가 어려웠다.

결국 지난 십여 년을 제멋대로 자란 나무들과 등나무 덩굴이 뒤엉키면서 밀림을 형성하였다. 주변에서 경작하는 주민들은 불편함을 토로하고, 에돌아 산책하는 주민들은 금방 멧돼지라도 뛰어나올까 봐 무섭다고 하소연을 하였다. 지난해 가을부터 밭 정리를 하겠다는 생각을 머금으면서도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얼떨결에 정리를 깨끗하게 해주겠다는 사람을 만나게 되어 일은 시작되었다. 그런데 2주가 지나도록 일은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일주일은 족히 더 걸릴 것 같다.

밖에 나가서 점심 식사를 하자는 누이들의 의견을 고사하고, 농막에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는 두둑 만들기에 몰두하였다. 저녁때가 다 되어서 비닐 씌우는 작업까지 마쳤다. 고추는 다음 날 새벽에 심기로 하고, 저녁 식사를 즐기기 위하여 시내로 나갔다.

다음 날, 누이들은 새벽에 일어나서 고추를 심었다. 150개의 고추 모는 채 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 땅속에 오롯이 뿌리를 내렸다. 곧바로 누이들은 블루베리밭으로 가서 잡초를 제거하였다. 풀이 무성하던 블루베리 밭둑도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때 늦은 아침 식사를 하면서, 나는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막걸리 한 잔씩을 권했다. 누이들은 술꾼처럼 한입에 마셨다.

어버이날에 오빠 챙기느라 고생들 했다. 내가 이 고마움을 어떻게 보답하지.”

에이, 보답이라니요. 오빠는 우리에게 어버이인걸요.”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가득하지만, 정작 무엇을 베풀어 주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내가 어버이란 말을 들을 자격이 한 푼어치나 있는지 자문해 보았다.

내가 누이들에게 버팀목이 되지 못했는데…….”

오빠! 언제나 건강만 하세요. 오빠 자체가 버팀목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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