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의 낱말 여행(3) / 개사망
■ 박일환의 낱말 여행(3) / 개사망
  • 박일환 시인
  • 승인 2022.06.14 15:01
  • 호수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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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말[死語]이 된 순우리말
박일환 시인
박일환 시인

날이 개더운데 저기 가서 아이스크림이라도 사 먹고 가자.”

그러자. 오늘 날씨 정말 개짜증나게 덥다.”

젊은이들 사이에 언젠가부터 아무 말 앞에나 개를 붙여서 사용하는 걸 들을 수 있다. 개폼을 잡는다거나 개판을 벌였다는 식의 말들은 예전부터 있었다. 그럴 때 라는 접두어는 대개 안 좋은 모습이나 상황을 나타낼 때 쓰였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새로 만들어서 사용하는 말들을 잘 들어보면 꼭 부정적인 용법으로만 쓰는 건 아니다. ‘개웃겨’, ‘개좋아’, ‘개이득같은 말들을 보면 그렇다. 그냥 강조의 의미로 를 가져다 붙이는 거라고 본다면 앞으로 국어사전에 라는 접두사에 다른 용법도 있다는 내용을 첨가해야 할 듯하다. 지금도 국어사전에 그런 용법에 대한 풀이가 나와 있으며, ‘개망나니같은 말을 예로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앞에 부정적 뜻을 가지는 일부 명사 앞에 붙는다는 단서를 달아놓았다. 이제는 부정적 뜻이 아닌 긍정적 뜻을 가진 낱말 앞에도 붙는다는 내용으로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접두사 가 앞에 붙은 말들 중에서 그나마 별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낱말은 개나리 정도일 듯하다. 개여울이라는 낱말도 있지만, 이때의 는 접두사가 아니라 개울을 뜻하는 말이다.

국어사전에 표제어로 올라 있긴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쓰기 어려운 낱말들이 있다. 만일 모처럼 만난 사람에게 그동안 운동을 열심히 하시더니 개소년이 되셨군요.”라고 한다면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화를 내는 상대방에게 늙은이의 몸과 마음이 다시 젊어진 것을 뜻하는 개소년(改少年)의 뜻으로 한 말이라고 해본들 그런 변명이 통하겠는가. 속된 말로 개작살이 날 게 뻔한 노릇이다.

이런 말은 또 어떤가? “싱글벙글하는 걸 보니 개사망이라도 한 모양이로군.”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저 친구가 대체 무슨 말을 뇌까리고 있는 건가 하는 표정을 짓기 마련이겠다. 국어사전에 개사망이라는 낱말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무슨 뜻인지 알아맞혀 보라고 하면 상당수가 견공(犬公)이 돌아가신 걸 뜻하는 말이 아니냐고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낱말이다. 개사망은 순우리말로, ‘남이 뜻밖에 재수 좋은 일이 생기거나 이득을 보는 것을 비난조로 이르는 말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앞에 가 붙은 말이라서 뜻풀이에도 비난조로 이르는 말이라고 했다. 그러니 함부로 쓸 말은 아니다. 그런 걸 떠나서라도 낱말 자체의 뜻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이미 죽은말[死語]이라고 보아야 한다.

개사망이 있으면 사망도 있지 않을까? 국어사전에는 사망이 장사에서 이익을 많이 얻는 운수라는 뜻을 담아 표제어로 올라 있다. 장사를 하는 이들에게 참 반갑게 다가가는 말이긴 할 텐데, 이 말 역시 죽은말 목록에 한 줄 보태고 있을 뿐이다. “당신 가게에 오늘 사망 수가 들었어.” 같은 말을 어찌 쓰겠는가. 어쨌거나 이런 낱말들을 모른다고 해서 개망신당할 염려는 없으니 개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소가 웃는다는 속담은 있어도 개가 웃는다는 속담은 없지만, 별 시답잖은 소리를 한다며 골목 저 귀퉁이에서 누렁이 한 마리가 씩 웃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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