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를 지역 문화의 한 축으로
폐교를 지역 문화의 한 축으로
  • 뉴스서천
  • 승인 2002.04.11 00:00
  • 호수 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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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교를 말하라고 하면 잠시 머뭇거려진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해를 거듭할수록 지금도 매년 많은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나름대로 전통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니 머뭇거릴 하등의 이유가 없을지 몰라도 내가 입학하고부터 동심을 키운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갖가지 이유를 들어도 허전한 마음을 대신할 수는 없다. 어렸을 때 분교를 거쳐 폐교의 수순을 밟은 내 모교는 지금은 가슴속에 기억으로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산업 발전은 우리의 생활에 많은 변화를 던졌다. 도·농간의 부조화가 생겨났고 그로 인해 자의 반, 타의 반 고향을 등지는 부작용을 겪어야했다. 농촌 사회에 분 도시화 물결은 단순한 이농현상으로만 보기에는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있었고 경제성 논리에 의해 결국 소규모 학교의 통폐합이 단행되었다. 그렇게 대전으로 전학오기 전, 나의 어렸을 적 추억이 담긴 모교 역시 역사의 한 장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폐교’라는 이름을 안고 말이다.
폐교….
특히 학생수의 격감이란 명목으로 문을 닫는 학교는 전국적으로 이루 헤아리기가 겁이 날 정도다.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추억이 담긴 모교를 그렇게 허무하게 우리는 잊어야 했다. 수몰되어 갈 수 없는 것도 아니고 건물이 헐리어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아닐진대 우리는 기억을 애써 더듬어야 하고 그렇게 간판이 내려진 학교는 이제는 잡초만이 무성할 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폐교를 활용해 일반인의 수익사업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학교가 그 지역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과 아울러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폐교일지라도 학교라는 위상과 기능을 감안한다면 지역민들을 위한 문화적, 교육적 용도로 활용할 충분한 대안을 찾을 수 있을 텐데 버려진 채 외면 받고 있는 폐교라는 이유로 수익 사업 용도로 쓰인다는 것에는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물론 폐교가 수익사업용도로 쓰이는 것이 굳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폐교를 매각이나 임대할 경우 해당 교육청은 유지·관리비가 전혀 들지 않을뿐더러 상당한 수입까지 거둘 수 있다는 경제성 논리를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일반인에게 매각이나 임대를 했을 경우 사용에 따른 제재 장치가 사라지거나 극히 제한된다는 점이다. 결국 활용되고 있는 대다수 폐교의 터는 지역 주민들과 호흡을 함께 했던 과거의 길에서 벗어나 산업공간으로 탈바꿈될 것이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폐교가 되었다 할지라도 학교의 명맥은 이어져야 하는 것이 그 이유에서다. 또한 교육행정기관과 자치단체의 유기적 협조가 절실히 요구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생각을 바꾸면 폐교라 할지라도 자치단체에 기증되어 아름답게 꾸며져서 훌륭한 여가 활동 공간이나 교양 강좌 교실 등으로 활용되고 있는 경우를 충분히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경남 울주군과 울주문화원은 군내 버려진 삼광분교에 ‘울주향토사료관’을 꾸며 문을 열었다. 전시실을 마련하고 민속자료와 고서화, 어구 및 특산품 등을 전시, 무료로 관람할 수 있게 했다. 안성시는 폐교된 대문분교를 안성교육청으로부터 무상으로 임대, ‘예술창작 스튜디오’로 바꿔 다시 찾는 학교로 만들었다. 그렇게 하여 작가들의 창작 공간 뿐 아니라 전시회도 열어 지역문화센터로 자리잡게 하였다. 내 고향인 충남 서천의 월기분교는 ‘월기교육문화원’으로 이름을 바꾸어 지역 내 충효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아직도 전국의 많은 폐교는 찾는 이 없이 버려진 채 방치되고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채 이제는 매각이나 임대의 대상으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문화가 싹트지 않고서는 밝은 내일을 기대할 수 없고 밝고 맑은 정서 역시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폐교는 그렇기 때문에 ‘폐교’로만 남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자신이 꿈을 키우던 학교라는 애착을 떠나 한 마을의 단합을 위해 그 보다 더 멋진 공간은 없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사회·문화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농어촌 지역 학교들이 학교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지역주민들과 함께 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자연스레 붕괴되어 가고 있는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방안으로라도 폐교의 공익적 활용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폐교에 대한 투자를 외면한다면 지역 교육은 물론 지역 경제와 생활도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텅 빈 운동장에 잡초만이 무성할지라도 앞으로는 그 공간에 한 점의 미술 작품이라도 기대해보는 것이 욕심이 아니길 바라는 것이다.
<양원준 / 한밭대학교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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