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느리게 느리게
■ 모시장터 / 느리게 느리게
  • 권기복 칼럼위원
  • 승인 2022.07.07 01:22
  • 호수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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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투성이 생활을 시작한 지 두 해를 넘기고 있다. 그동안 각종 농작물을 심고, 가꾸어 보면서 애환을 겪은 소감도 여러 보따리가 될 만하다. 비록 농가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어린 시절에는 농사일에 무관심이었기에 처녀지의 세계나 다름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때로는 품과 씨앗만 낭비하고 결실은 제로이기도 하였지만, 내 손으로 일군 땅에서 농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다보면 신통방통하였다.

작년에는 땅콩 농사를 처음으로 해 봤는데, 그럭저럭 잘 된 편이라서 형제들과 나눠 먹을 수 있었다. 모두 한입으로 땅콩이 아주 고소하고 맛있다는 말을 들을 때는 기분이 참 좋았다. 늦가을에는 밭에서 키운 배추와 무, 각종 양념거리로 형제와 조카들이 모여 김장을 하게 되어 따뜻한 겨울을 맞이할 수 있어서 뿌듯하였다. 올해에도 밭에서 자라는 농작물들은 돈으로 바꿔질 것들이 아니라 형제들과 함께 나눌 신의 선물들이다.

거의 일천 평에 달하는 밭을 가꾸는 것은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요즘 같은 여름날에는 온 밭에 풀 자라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이다. 게다가 내가 사용하는 농기구는 일세기 이전의 것들이다. 삽과 쇠스랑, 호미와 낫이 매일같이 내 손에 잡혀있는 도구들이다. 우리 밭 주변에 집은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지만, 마을 한가운데와 같은 위치라서 종종 지나가는 주민들이 있다.

 

선생님! 매일같이 일하시네요. 그런데 요즘 누가 쇠스랑으로 밭 만든대요? 기계로 하면 금방 하는걸요.”

, ! 그렇지요.”

 

대답은 주민의 말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밭 만들기를 하려면 보통 트랙터로 갈고, 팔십 대 어르신도 관리기를 이용한다. 아마 내가 사흘은 걸려서 밭 한 두둑 일구기를 한다면, 관리기만 써도 반 시간을 넘지 않는다. 그러니 지나치는 발길이지만 얼마나 갑갑하게 보일까!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끄덕였지만, 다음 날에도 여전히 쇠스랑이 쥐어져 있었다. 창고에는 예초기를 비롯하여 전기나 기름으로 동력을 일으키는 기계가 몇 가지 있지만, 일 년에 한두 번이나 쓸까 말까 한다.

정말 일세기 이전에는 교직에 종사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농촌개혁의 일환으로서 기계화를 외치곤 했는데, 나는 정반대의 궤도에서 살고 있다. 기계 사용이 효율적이라는 것은 필자도 잘 알고 있다. 몸이 훨씬 더 편할 수 있음도 잘 안다. 그러나 기계 작동 소리가 거슬려서 싫다. 종종 빠르게 이루어지는 것은 혼란을 가져다준다. 옆에서 누군가가 재촉하면 심장박동부터 거칠어진다.

초봄에 밭 일구기를 하다 보면, 종종 땅속에서 개구리들이 튀어나온다. 때로는 쇠스랑 발에 찍힌 녀석들이 있어서 가슴 아프기도 하다. 무심코 뒤돌아보면 참새들이 굼벵이나 지렁이를 챙기기 위해 바짝 뒤를 따르고 있다. 땅강아지나 갖가지 곤충들도 제 모습이 드러나면 잠시 머뭇거리다가 저갈 길을 찾아간다. 땅이 얼마나 수분을 머금고 있는지 쇠스랑 발에 찍히는 감촉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풍경들은 기계를 사용할 때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정취이다.

나는 느리게 느리게 살고 있다. 느린 정취를 맛보면서 살아가는 것도 괜찮은 삶이라고 나 자신을 다독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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