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의 낱말여행 (10) / 개똥참외
■ 박일환의 낱말여행 (10) / 개똥참외
  • 박일환 시인
  • 승인 2022.08.12 09:17
  • 호수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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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을 앞에 갖다 붙인 이유는?
박일환 시인
박일환 시인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개똥밭에서 구르며 살고 싶어 할 사람은 없겠다. 개똥밭은 개똥밭일 뿐, 피할 수 있다면 당장 피하고 싶은 장소일 뿐이다. 그런데 이 향기롭지 못한 말을 제 이름 앞에 달고 사는 것들이 있다. 반딧불이라고 하는 벌레의 다른 이름이 개똥벌레고, 길가나 냇가에서 흔히 자라는 쑥 종류 중에 개똥쑥이라는 것도 있다. 개똥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하필이면 개똥을 앞에 갖다 붙인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그런 이름들 곁에 개똥참외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개똥참외를 국어사전에서 찾으면 뜻밖의 풀이가 덧붙어 있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렇게 나온다.

1. 은어로, 호박잎을 썰어 넣어 만든 가짜 담배를 이르는 말.
2. 길가나 들 같은 곳에 저절로 생겨난 참외. 참외보다 작고 맛이 없어 보통 먹지 않는다.
3. 서자(庶子)가 첩을 얻어서 낳은 자식을 낮잡아 이르는 말.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첫 번째에 해당하는 풀이를 하며 범죄자들의 은어라고 했다. 개똥참외가 참외 같지 않다 보니 담배 같지 않은 담배를 일컫기 위해 저런 은어를 만들어 사용했던 모양이다. 그보다 내 눈길을 잡아끈 건 세 번째 풀이에 나오는 내용이다. 출처를 밝히지 않은 탓에 정말로 저런 표현이 쓰였는지 확인할 길이 없고, 그래선지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세 번째 풀이가 나오지 않는다. 요즘에야 서자니 첩이니 하는 개념 자체도 거의 사라진 터이므로 아주 오래 전에나 쓰였을 법한 말이다.

홍길동이 서자로 태어난 탓에 호부호형을 하지 못했다는 말을 들어본 이들이 많을 텐데, 엄밀히 따지자면 서자라는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서자라는 말 대신 서얼(庶孽)이라는 말을 들어본 이들이 있을 텐데, 서얼은 서자와 얼자를 합친 말이다. 서자는 남자 양반이 첩을 들여 낳은 자식이고, 얼자는 첩이 아닌 노비와 같은 천민 여자를 통해 낳은 자식을 말한다. 당연히 얼자는 서자에 비해서 급이 낮고, 홍길동의 어머니는 홍대감 집 노비였으므로 홍길동의 신분은 얼자에 해당한다.

조선 시대에 서얼에 대한 차별을 없애 달라는 상소가 종종 있었으며, 서자는 높은 벼슬자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정조가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같은 서자 출신을 불러들여 규장각 검서관 같은 직책을 맡긴 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에 반해 얼자들은 그런 혜택조차 누리기 힘들었다.

그런데 서자가 본부인이 아닌 첩을 들여 낳은 자식이라니! 그런 운명은 또 얼마나 기구했을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애잔해진다. 개똥참외는 개가 참외를 먹고 똥을 눈 자리에서 참외 씨가 싹을 틔워 자랐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란다. 꼭 개똥 눈 자리에서만 그러는 건 아니겠으나 그럴싸한 작명이긴 하다. 개똥참외의 죄라면 생겨날 자리가 아닌 데서 생겨난 걸 텐데, 그게 본인의 의지에 따른 게 아니라는 데서 더욱 가혹한 운명으로 다가온다.

표준국어대사전이 북한 속담이라며 개똥참외도 가꿀 탓이다를 올려놓았다. 평범한 사람도 잘 가르치면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음을 비유해서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와 함께. 설마 북한에서만 쓰는 속담일까 싶긴 하지만 그보다는 저 말이 지금 우리 현실에서 통용될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부모의 지위와 재력에 따라 자녀의 운명이 결정되는 시대가 되었으며,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는 영영 가붕개로만 살아야 한다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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