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전, 저녁 미팅을 다녀온 아내가 다음 날 아침에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다름 아닌 코로나 양성반응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 지인은 전날 저녁에 아내와 함께 한 사람이었다.
우리 가족은 부리나케 마스크를 챙겨 썼다. 아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 후로 모든 일은 가족 방 카카오톡으로 대화가 오고 갔다. 아내는 우선 나와 아들이 며칠 동안 농막에 가서 지내기를 권유하였다. 딸은 자기 방에서 가능하면 문밖에 나오지 말고, 소독을 철저히 하면서 회사에 오가라고 하였다.
나는 반찬거리를 챙겨서 집을 떠났다. 아들은 전염될 걱정을 하지 않는다면서, 집 떠나기를 거부하였다. 딸은 오히려 집에서 한 일주일 쉬게 전염되었으면 좋겠다고 우스개를 하였다. 졸지에 나만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요즘 가장이라는 게 한 집안에서 가장자리에 불과한 것이라는 걸 새삼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이전에도 하루 중 거의 절반은 농막에서 생활하였다. 이제 농막이 내 생활의 중심으로 익숙해진 지는 오래지만, 내가 접촉자도 아닌데 하염없이 농막에 갇혀 살아야 한다니 서럽기만 하였다. 눈에 물기가 맺혀서일까, 창밖으로 보이는 별들이 더더욱 초롱초롱하였다.
보건소에 다녀온 아내는 당장은 음성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양성인자와 접촉하였을 경우, 사나흘 이후에 나타날 수 있으니 경과를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개인 사정으로 인하여 코로나 백신주사를 한 번도 주입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동안 코로나가 확산될 때에는 사람들이 모인 곳을 철저히 피했다. 그러니 급급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다행히 지금까지 우리 식구들은 코로나 전염으로부터 비껴왔다.
하룻밤을 보내고 아내와 자식들 생각을 묻었다. 마침 김장용 채소를 파종할 일도 늦어지고 있어서 서둘러야 할 일이었다. 무성히 자란 잡초들을 뽑아내고, 쇠스랑질에 몰입하였다. 사람 손이 가니 뽀얀 흙의 속살이 드러나서 무척 아름답게 보였다. 돌바기 강아지 두 마리는 온종일 함께 있어서 신이 났다. 집에 오갈 때보다 일의 진척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조석으로 기온이 뚝 떨어져서 일할 맛도 나는데, 새벽에 강아지들이 제창으로 짖어대니 저절로 노동량이 많아졌다.
가끔은 아내가 괜찮은지 궁금하지만, 내 생각의 중심은 당장 닥친 상황에 경도되어 있었다. ‘이제 파는 다 심었으니, 무씨 파종할 땅을 손봐야지. 배추도 빨리 모를 사다가 심어야 하는데….’ 등허리가 뻐근하여 평상에 누우면 강아지들이 달려들어 재롱을 피우니, 나 홀로 ‘허허…’ 웃음을 터뜨리곤 하였다. 첫날 나만 외톨이가 된 서러운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사람은 처한 환경에 맞추어 산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나간 것은 기억의 책갈피에 끼워두고 새로운 숲을 바라보며 걸어간다. 얼마나 적응을 잘하면서 살아가느냐에 행복의 열쇠가 들어있다. 게다가 좋은 환경이 받쳐준다면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무더위가 지나고 상쾌한 가을 초입에서 코로나하고 우리나라 정치만 잠잠해지기를 기대해본다.
지금은 독수공방 중이다. 내 마음의 평화가 가득한 시간을 즐기고 있다. 그렇지만 내일 환경이 바뀔지라도 그 상황을 따르고 즐길 것이다. 그 길이 나를 행복의 문으로 인도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