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내는 휴대폰 요금이 얼마이고, 전기요금이 얼마인지는 누구나 대충은 알고 있을 것이다. 커피숍과 카페의 커피값도, 커피를 사 마시는 사람이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매일 먹는 밥 한 공기는 얼마 정도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 밥 한공기에 들어가는 쌀값은 300원이 안 된다. 500원도, 1000원도 아니고, 30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농민들이 오랫동안 염원해온 것은 밥 한공기에 들어가는 100g 쌀값이 300원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 정도 쌀값이 되면, 농민들이 농사지을 맛이 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산지에서 20kg 쌀(정곡)값이 6만원 정도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쌀값은 날로 떨어지고 있다. 농사짓는 데 들어가는 면세유, 농자재, 비료 가격은 올랐는데, 정작 쌀값은 작년 대비 20% 이상 떨어진 상황이다. 2021년 10월에는 5만 4천원이 넘던 20kg 쌀값이 지금은 4만 2천원대까지 떨어졌다.
필자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떨어지고 있지만, 독자분들이 이 글을 읽는 시점에는 더 떨어졌을 수도 있다. 곧 수확되는 올해 햅쌀이 시장에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관료들은 쌀값이 이렇게 떨어진 이유는 쌀이 소비량에 비해 과잉생산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대한민국은 1년에 40만톤 이상의 쌀을 수입하고 있다. 쌀이 필요해서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통상 협상과정에서 다른 것을 챙기기 위해 쌀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정부측 설명이다.
이렇게 수입되는 쌀이 없다면, 대한민국은 오히려 쌀이 모자라는 상황이다. 2021년에도 정부 계산에 따르면 27만톤의 쌀이 초과 생산되었다는 것인데, 이 정도면 쌀수입만 하지 않아도 쌀은 남아돌지 않는다. 오히려 모자란다. 이처럼 지금 쌀의 공급과잉 현상은 기본적으로 정부 통상정책의 결과물이다. 자연적인 현상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쌀은 필수재이다. 밥을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쌀이 생산될 수 있는 기반을 유지하는 것은 정부의 책무이다. 제2의 주곡처럼 된 밀의 자급률이 1%도 안 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식량을 책임질 최후의 보루는 ‘쌀’일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 곡물수급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쌀’의 생산기반을 지키는 것은 전국민의 생존문제이다.
그나마 2019년까지는 ‘변동직불금’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국가 차원에서 목표로 하는 쌀값을 정해놓고, 시장가격이 목표가격에 미달하면 차액의 85%를 농민들에게 보전해줬던 것이다.
그런데 2020년부터 변동직불금 제도가 폐지됐다. 아마도 경제관료들은 변동직불금으로 나가는 예산을 없애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대체방안으로 제시된 것이 ‘자동 시장격리’라는 제도였다. 쌀이 초과생산되거나 쌀값이 하락하면, 정부가 쌀을 매입함으로써 ‘쌀을 시장에서 격리’시킨다는 것이 시장격리라는 방식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일정한 조건만 되면 자동으로 신속하게 시장격리를 시킨다는 것이 ‘자동 시장격리’라는 방식이었다. 국회도 이런 ‘자동 시장격리’제도를 도입한다고 하면서 ‘변동직불금 폐지’에 반발하는 농민들을 안심시켰다.
문제는 2021년에 풍년이 들면서 쌀이 초과생산됐는데, 정부가 시장격리를 하지 않고 시간을 끈 것이다. 본래 10월 15일까지 쌀 시장격리 등 대책이 발표됐어야 했다. 그런데 정부는 농민단체의 요구도 무시하고 시간을 끌다가 2021년 연말이 되어서야 시장격리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실제 쌀 매입은 올해 2월에야 이뤄졌다. 매입한 물량도 초과 생산된 물량에 못 미치는 물량이었다. 매입한 가격도 ‘최저가 입찰’방식으로 정했다. 그러니 떨어지는 쌀값이 잡히지 않고, 오히려 더 떨어지는 결과가 초래됐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살펴보면, 결국 국가가 농민들을 기만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변동직불금 폐지의 대체방안으로 내놓은 ‘자동 시장격리’가 실제로는 정부관료들에 의해 ‘자의적인 시장격리’가 됐기 때문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이 입게 생겼다.
밥 한 공기에 해당하는 쌀값이 300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농민들의 오랜 바램은 충분히 실현가능한 것이다. 엉뚱한 곳에 국민세금을 쓰지 말고, 적정한 쌀값을 보장하는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식량위기가 우려되는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정부는 당장 더 이상의 쌀값 폭락을 막고 올해 수확되는 쌀부터 적정가격이 보장될 수 있도록 긴급대책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