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한가위 날에
■ 모시장터 / 한가위 날에
  • 신웅순 칼럼위원
  • 승인 2022.09.22 07:39
  • 호수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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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웅순 칼럼위원
신웅순 칼럼위원

나는 딸만 둘이다. 두 딸 다 딸 하나씩 낳았다. 큰 손녀가 3, 작은 손녀가 두 살이다. 가족은 우리 부부까지 8명이다. 언제부터인가 가족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한 해 한 해 미룬 것이 수 년이나 흘렀다. 노심초사야 했겠냐만 언뜻 언뜻 방정맞은 생각들이 스쳐가곤 했다.

올 추석은 가족이 다 함께 모였다. 가족사진을 찍었다. 짐을 던 기분이다. 아이들 시집보내면 홀가분해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손녀를 둘이나 낳으니 더 바빠졌다. 두 딸 부부 생일, 손녀 백일, 돌 등 챙겨주고 신경 쓸 게 많다. 힘 든 것은 육아였다. 어리면 어린대로 크면 크는 대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보아야 할 몫이 따로 있었다. 집 사람이 애기 보러갈 때면 공간이 빈다. 내가 채워야 할 공간이다. 빨래 개기는 좀 되었고 청소 시작은 얼마 안 되었다. 집 사람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니 내가라도 거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진작 찾아서 해야 할 일들이었다.

내게는 아버지, 어머니, 남매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없다. 우리 세대엔 거의 그랬다. 당시엔 사진을 찍으려면 읍내까지 가야 하고 그만한 경제적 여유도 없었고 그런 것조차도 생각하지 못했다.

빛바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영정 사진만이 사진첩에 남아있을 뿐이다. 물론 내 백일 사진, 돌 사진도 없다. 동네를 돌아다니는 사진사가 배추밭에서 급하게 찍은 것 같은 3(?) 때의 것이 최초의 사진이었다. 그것도 사촌 누나한테 물려받은 사진이었다.

이젠 욕심을 버릴 때가 되었고 하나하나 정리해갈 때가 되었다. 고인이 된 고등학교 동기들이 63명이나 된다.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하면 한 반 이상이 없어진 셈이다.

어지간히 욕심이 많더니만, 쯧쯧.”

무덤을 지나면서 그런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딸과 손녀에게 어떤 아버지, 할아버지로 기억될까. 아이들은 아버지하고 놀러간 기억이 거의 없다고 한다. 주경야독하느라 그랬다. 그럴만한 사정이야 있었지만 지금에 와 무슨 말이 필요하랴. 대신 아이들에게 못다 한 추억들을 손녀들에게 만들어 줄 생각이다.

추석날이면 아버지 생각이 간절하다.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내고 해마다 아버지 손을 잡고 성묘를 갔다. 산을 넘고 들을 건너가는 멀고 먼 성묘길이었다.

아들아, 누구 자손이지?”

언제나 그렇게 묻곤 했다.

석북 자손.”

몇 대 손이지?”

팔 대 손.”

언제나 이렇게 묻고 대답했다.

그 때부터 나는 석북 할아버지를 닮아가고 있었나보다. 그리고 재당숙 석초 시인도 함께 말씀하시곤 했다. 아버지는 자주 관산융마를 읊으셨다. 석북 자손으로 무척 자부심을 갖고 계셨던 것 같다. 당시 석북 4남매가 시명을 떨쳤고 게다가 손자까지 포함해 숭문 8문장으로 이름을 날렸으니 말이다.

철부지였던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시인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시인이 되었다. 재주 없는 시인이 되었다.

나는 아버지처럼 딸에게 딸아 넌 누구 자손이지?” 라고 물어본 적이 없다. 나는 왜 딸들에게 그런 것을 묻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뿌리를 연구하는 국문학자인데도 말이다.

지금에야 정신이 확 드는 것이다. 이 부끄러움을 누구한테 하소연하겠는가.

얘들아, 오늘이 백년만에 만난다는 제일 둥근 슈퍼문이라는데 달맞이 하러가자.”

손녀를 안고 가족들과 함께 공원을 찾았다.

사랑하는 손녀야, 총명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거라.”

나는 달에게 기원하며 달을 찍어 인증샷 했다.

올 한가위는 차례지내고 가족사진을 찍고 달맞이까지 했다. 늘그막에 모처럼 누려보는 행복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이 나이 먹도록 별로 해준 게 없는 것 같다. 그것이 나를 조금은 허전하게 만들었다. 인생살이가 그렇듯 구름 사이로 달이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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