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판교장터 미군폭격 추모위령제 열려
제2회 판교장터 미군폭격 추모위령제 열려
  • 허정균 기자
  • 승인 2022.09.22 08:33
  • 호수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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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판교장터에서 희생된 원혼 위로
▲제2회 판교장터 미군폭격 추모위령제에 헌화하는 주민들
▲제2회 판교장터 미군폭격 희생자 추모위령제에 헌화하는 주민들

2회 판교장터 미군폭격 희생자 추모위령제가 지난 15일 판교면 현암리 판교장터에서 열렸다.

복대리판교장터희생자추모회가 주최하고 서천군청, 판교면, 서천문화원, 뉴스서천 등이 후원한 이날 행사에는 나소열 전 충남 부지사, 김경제 서천군의회 의장, 전익현·신영호 도의원, 김아진·이강선·이지혜·홍성희 군의원, 최명규 서천문화원장, 김영완 판교면장 등 기관 단체장, 주민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판교도토리 예술단의과 국악인 황세희씨의 식전공연과 함께 시작됐다. 신경선 행사 추진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지난해 1회 때에는 추진위원들의 자부담으로 행사를 치렀으나 올해 8서천군6.25전쟁민간인희생자위령사업 등에 관한 조례가 제정되어 앞으로 매년 군으로부터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추진부위원장인 정완희 시인(판교면 복대리 출신)은 그가 지은 복대리 판교장터 그 여름의 끝을 낭송했다.

이어 추모제례 및 헌화가 이어졌으며 수성교회 최연범 목사의 추모 기도에 이어 김경제 서천군의회 의장, 전익현, 신영호 도의원, 최명규 문화원장 등의 추념사가 있었다.

전익현 도의원은 추념사에서 지난해 희생된 복대리 주민들을 위한 추모탑 건립, 추모공원 조성 등에 관한 건의가 있어 이에 대해 약속을 했다고 말했다.

또한 최명규 문화원장은 관이 아닌 민간에서 주도해 이같은 행사가 열리게 됨에 큰 의미가 있다매년 이 행사가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한 유족대표 이재명씨는 인사말을 통해 폭격 당시 초등학교 1학년 때 판교장터에서 어머니를 잃어 평생 한을 품고 살아온 아버지를 보고 자랐다이러한 자리를 만들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72년 전인 1950910일 오전 11시 무스탕이라 불리던 F51 미군기 2대가 나타나 장터 상공을 선회하더니 장터에 모여든 흰옷 입은 주민들을 향해 기총소사를 가해왔다. 순간 장터는 아수라장이 됐고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날 현암리 장터로 몰려든 주민들은 인민군이 미군의 폭격에 대비 장을 열지 못하게 하자 판교국민학교 뒤 판교리와 복대리 가실마을로 옮겨가 임시장터를 열었다.

당시 많은 목격자들이 있었지만 이 엄청난 사건의 진상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역사의 뒤안길로 묻히는 듯했다.

그러나 199910월 뉴스서천의 보도를 계기로 유가족 대책위원회가 구성되고 가족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하기에 이르렀으며 2010105일 진실화해위는 진실규명 신청에 대해 진실규명으로 결정했다.

당시 서천지역은 북한의 주공라인인 경부축선으로부터 서쪽으로 치우쳐 있었기에 미군이나 한국군이 방어전투를 실행하지 않았으며 해병대를 비롯한 지역경찰이 북한군 제6사단 13연대에 맞서는 정도로 상시 주둔한 대규모 인민군 부대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미 제5공군의 F-51F-80은 도로상에 움직이는 차량과 병력의 파괴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북한군의 병력과 보급품이 촌락지역에 은닉됐다는 판단으로 인근 촌락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판교면 폭격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미군 문서로는 제18전폭단 소속 제67전폭대대의 1950910일자 임무보고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문서에 따르면 당일 1055분경 F-51 2대가 이륙하여 임무를 완수하고 1250분경에 착륙한 것으로 보고됐다. 이 시간 중 판교 임시시장에서 기총사격을 하며 머문 시간은 1130분부터 45분까지 15분간으로 판교리 동쪽으로 이동하던 소속 비행기 두 대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면을 목격, 기총소사로 100여명을 사살한 것으로 기록돼 대부분의 희생자 유족의 진술과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판교면 복대리에 거주하는 주민 김중근(1935년생)씨는 이날 오후 3시경 미군 폭격기 2대가 다시 나타나 사격을 가했으며 이는 인민군 장교를 잡기 위해서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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