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은 조선 왕조를 건립한 태조(재위 1392~1398) 때부터 철종(재위 1849~1863, 조선의 제25대 왕)의 통치기에 이르는 470여 년간의 왕조의 역사를 담고 있다. 실록은 역대 제왕을 중심으로 하여 정치와 군사‧사회 제도‧법률‧경제‧산업‧교통‧통신‧전통 예술‧공예‧종교 등 조선 왕조의 역사와 문화 전반을 포괄하는 매일의 기록으로 그 가치를 높이 평가 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같은 기록문화는 국가 주도의 기록뿐만이 아니다. 개인 차원에서도 수많은 기록들이 남아있어 과거사를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잘 알려진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의 개인 일기로 임진왜란을 연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록이다. 이밖에 임진왜란 직전부터 정유재란이 끝날 때까지 약 9년 동안 오희문이 쓴 일기인 ‘쇄미록’은 1991년 국가보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이 이 땅에서 추진된 산업화 과정 속에서 쇠락해가는 농촌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개인의 일기가 전북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출간돼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일기를 쓴 주인공은 현재 마서면 남전리에서 살고 있는 나우열(전 뉴스서천 이사)의 부친 고 나상설씨이다. 그는 1915년 마서면 남전리에서 태어나 1997년 82세로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그의 셋째 아들 나우열씨(마서면 남전리 거주)에 따르면 그의 부친이 세상을 떠난 1963년 그가 가정의 살림을 책임진 1963년부터 일기를 써왔다 한다. 그가 남기 일기책은 1963년부터 1980년까지의 기록을 담은 31권이다.
이러한 정보를 입수한 ‘전북대학교 쌀·삶·문명연구원’은 수소문을 통해 셋째 아들 나우열 씨를 만나게 되었고 그가 보관해오던 부친의 기록물을 출판할 수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나상설은 마서면에서 손꼽히는 지주 집안의 자제로 상당한 토지를 물려받은 중소 지주였다. 따라서 ‘서천 마서일기’는 1960년대 이후 한국 농업의 쇠퇴 과정과 농민 층의 고난한 삶의 역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정리해 출판한 연구팀은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자료는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 이른바 중소지주층이 어떻게 해체되어가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나상설의 일기에 의하면,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지주층은 산업화에 대한 이해 부족과 적응 실패 등으로 인해 점차 해체되어간다. 현대사회의 성과들은 일반적으로 한국사회에서 토지자본이 산업자본으로 전환하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지주층이 자본가로 전환하는 데 실패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나상설의 일기는 농업의 쇠퇴와 함께 지주층의 투자 실패 등으로 인해 농지가 도시의 산업자본으로 흡수되는 역설을 보여준다.”
마서일기는 나상설 일가가 어떤 이유로 토지를 잃어가는지, 빈곤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등을 하루하루의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그 형식은 대부분 가계부 형식을 띠고 있다.
이 일기의 주인공 나상설은 지주로, 농부로, 농협이나 학교, 관공서의 위원과 임원으로 산림개발과 벌목작업으로, 농산물을 직접 시장에 들고 나가 파는 장사꾼으로, 그리고 도시 공장의 투자자로 1인 10역을 맡아 쉴 새 없이 일하지만 기울어가는 집안의 경제를 온전히 지켜내는 데는 실패했다.
우리는 이 일기를 통해 ‘이촌향도’가 붐을 이루었던 60, 70년대의 농촌사회를 고스란히 이해할 수 있다.
이 일기는 현재 1권(1963년~1966년)이 출간 됐으며 앞으로 2, 3, 4, 5권까지 연이어 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