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옛사람을 기준으로 내실있게 공부한 후학들
■ 송우영의 고전산책/옛사람을 기준으로 내실있게 공부한 후학들
  • 송우영
  • 승인 2022.12.08 10:17
  • 호수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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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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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헌문편14-1 첫 문장은 부끄러움을 묻는 대화로 시작된다. 제자 원헌이 부끄러움이 뭡니까 라고 물으니<헌문치憲問恥> 스승 공자님 말씀에<자왈子曰> “나라에 도가 있음에도<방유도邦有道> <딱히 하는 일 없이> 녹봉만 받아먹는 것이나<>, 나라에 도가 없음에도<방무도邦無道> (능히 홀로 잘하는 것도 없으면서) 녹봉만 받아먹는 것이나<> 이런 것들이 다 부끄러움이니라<치야恥也>”

다소 완곡히 풀어 말한다면 내가 직접 저지른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와 관계도 없을 것같은 일임에는 분명한 거 같은데 그런데도 나는 내가 원치 않는 책임을 져야 할 그러한 경우에 해당되는 조금은 어려운 문장이다.

본디 경전이라는 옛글 공부는 사람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해준다. 곧 나를 닦아 남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기본이다<수기이안인修己而安人> 이 기본을 알아가는 과정이 공부다. 공부는 개인 구원의 길에 이르는 과정인 셈이다. 그렇다면 공부를 하면 개인 구원에 이를 수 있는가.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라 함은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피안을 말하는 것은 아닐터. 과거시험 급제를 통한 현달을 이름일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구양수에게서 찾기도 한다. 구양수歐陽修<1007-1072>가 벗 소순蘇洵의 아들 소동파를 가르치면서 했다는 말 중 하나가 어려서는 목이 터져라 외워라였다. 그것이 그의 공부법이었다. 서당교육에서는 이를 갈성渴聲<갈성竭誠-지역에 따라서 한자를 달리 쓰기도함>이라 하는데 4세 때 아버지를 잃고 황망 중에 더군다나 생활의 빈곤까지 겹친 상황에서 구양수 모친이 선택할 수 있던 공부 방법이라야 아마도 경전을 무조건 외워야 하는 혹독한 공부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으리라.

이러한 공부법 탓인지는 몰라도 구양수는 약관의 나이인 20세 되던 1027년에 진사시進士試로 등과를 한다. 그의 문도가 소동파이다. 소동파蘇東坡 소식蘇軾<1037-1101>64세 일기로 생을 마감한 북송 때의 문인이며 서예가요 화가로 당송 8대가의 한 명이며 출생지는 사천성 미산眉山이다. 부친인 소순蘇洵<1009-106657>, 동생인 소철蘇轍1039-111273>과 함께 모두 당송 8대가에 이름을 올렸으며 당송 8대가의 한명인 구양수 문하에서 배우고 스승 구양수보다는 2년 늦은 22세에 등과한 인물이다.

임어당이 쓴 소동파 평전에 따르면 생전의 소순은 6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장녀와 차녀와 장남은 일찍이 유명을 달리했으며 차남인 소식과 삼남인 소철과 막내딸 소팔랑이 있는데 막내딸은 시집갔다가 시댁의 학대로 17세에 유명을 달리했다 전한다. 이러한 소동파, 소식蘇軾을 사숙 삼아 공부한 이가 명나라 말기 송강부松江府 화정華亭 사람 서예가이자 화가인 진계유陳繼儒<1558-1639>이며 그의 아호가 미공眉公인 까닭도 소동파의 출생지 미산眉山의 미자를 따서 지었다 전한다.

소동파와 소식蘇軾을 기준 삼아 공부한 또 다른 인물이 있는데 중국 4대기서 중 하나인 금병매金甁梅를 지은 왕세정王世貞<1526-1590>이다. 그는 소동파를 뛰어넘겠다며 1547년 가정嘉靖26년 소동파보다 1년 앞선 나이인 21세 때 진사시進士試로 등과한 인물이다. 그는 글 쓰는 참고를 후학에게 말한 바 있는데 이것이 이효일물법二效一勿法이다. ‘두 가지를 본받고 한 가지를 하지 말라는 말로 일효一效는 글은 반드시 서한을 본 받으며<문필서한文必西漢> 이효二效는 시는 반드시 성당을 본받으며<시필성당詩必盛唐> 일물一勿은 대력 이후의 책은 읽지 말라<대력이후서물독大歷以後書勿讀>이다.

이에 조선 사대부가 자제들이 어려서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이 두 권이 있는데 삼국지와 수호지가 그것이다. 이를 흔히 이회오서二誨誤書라 하여 그릇됨을 가르치는 두 권의 책쯤으로 읽히는 대목인데 수호지는 도둑질이나 나쁜 짓을 가르친다는 회도지서誨盜之書이며 삼국지는 꾀와 권모술수를 가르친다는 회모지서誨謀之書이다. 어려서는 덕을 쌓는 공부를 해야지 절대로 술수가 앞서는 공부라든가 그러한 책들을 접해서는 안된다는 게 당시 부모님들의 생각이다. 공부는 장이불수壯而不秀이다. 겉모습은 볼품없는 듯하나 속이 알차고 빼어난 것처럼 내실 있는 공부를 하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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