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공부를 많이 하셨던 공자님께서는 성장하시면서 어울린 사람들은 최소한 일국을 책임지는 위치의 군주들이거나 국정의 요직을 겸한 현자들었고 이런 공자님을 바라보는 각국 대부大夫들의 시선은 존경과 부러움과 동시에 조금씩이나마 시기 질투도 있었으리라. 논어자장493-19-22문장에 이에 대한 기록이 있어 쉽게 풀어쓰면 이렇다.
자공이 위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위나라 높은 벼슬의 위치에 있는 대부 공손조가 자공에게 물었다.<위공손조문어자공왈衛公孫朝問於子貢曰> “그대의 스승 공자님은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고 어디서 어떻게 공부하셨습니까?<중니언학仲尼焉學>”
자공은 말한다.<자공왈子貢曰> “주나라 문왕과 무왕의 도가<문무지도文武之道>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미추어지未墜於地> 사람에게 있습니다.<재인在人> 어진 이는 그 큰 것을 기억해두며<현자식기대자賢者識其大者> 어질지 못한 이는 그 작은 것을 기억해 두나니<불현자식기소자不賢者識其小者> 문왕과 무왕의 도가 아닌 것이 없지요.<막불유문무지도언莫不有文武之道焉> 스승 공자님께서는 그 어느 것인들 근거해 배우지 않을 것이 있으셨겠습니까마는<부자언불학夫子焉不學> 또 역시 상사인들 있으셨겠습니까?<이역하상사지유而亦何常師之有>”
마지막 문장에서 상사常師는 정해놓고 늘 따르며 배우는 스승을 말한다. 곧 공자님께서는 특정 스승이 없으셨다는 말이다. 이 말을 완곡히 표현한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나의 스승이다” 는 선악개오사善惡皆吾師라는 말이기도 하다. 곧 ‘선한 사람이나 선하지 않은 사람이나 모두가 내가 하기 나름에 따라 나의 스승이 될 수도 있다’ 쯤으로 읽히는 말이다. 선한 사람을 보면 그의 선함을 본받아 나의 선하지 못함을 고치면 되는 거고 선하지 않은 사람을 보면 나 또한 선하지 못함에 이르지 않을까 염려하여 전전긍긍으로 나를 살피면 될 일이다. 그리하여 나의 할 바의 자세를 곧고 바르고 의롭게 나를 고쳐나가는 것이다. 공자님께서는 그렇게 공부하셨다는 제자 자공의 해석인 셈이다.
이 문장을 근거로 후학들은 한자를 조합해 ‘학무상사學無常師’의 고사를 만들어냈다. 이런 공부를 일러 옛 사람 공번의 제자 이밀에 따르면 ‘명경강독독明經講讀獨’이라 한다. 성현의 경전을 홀로 익히 알고 강독講讀한다는 말이다. 특정 스승은 없으나 누구에게나 찾아가서 묻고 또 물어 가르침을 받아 깨우쳐 나아가는 공부법이다. 암튼 자공은 그렇게 위나라에서 일을 마치고 노나라에 돌아온 어느날 노나라의 국정을 운영하는 위치에 있는 노나라 대부 숙손무숙이라는 사람이 궁궐 조정에서 여러 대부들과 이야기하던 중에 공자의 제자 자공을 들먹이며 말하기를<숙손무숙어대부어조왈叔孫武叔語大夫於朝曰> “자공이 그의 스승 공자 보다 더 현명하다<자공현어중니子貢賢於仲尼>”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었던 또 다른 대부 자복경백이 조정의 일을 마치고 돌아와 조정에서 있었던 일을 자공에게 말했다.<자복경백이고자공子服景伯以告子貢>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난 뒤 자공이 말한다<자공왈子貢曰> 제가 이야기해 드리지요. 담장에 비유한다면<비지궁장譬之宮牆> “나 자공의 담장은 높이가 어깨 높이쯤 되어<사지장야급견賜之牆也及肩> 집 마당과 방안까지 훤히 볼 수가 있답니다.<규견지가지호窺見室家之好> 스승 공자님의 담장은 높이가 몇 길이나 되므로<부자지장수인夫子之牆數仞> 그 문을 찾아 들어가지 않으면<부득기문이입不得其門而入> 그 종묘의 아름다움과<불견종묘지미不見宗廟之美> 백관의 풍성함을 볼 수가 없답니다.<백관지부百官之富> 그러나 세상에는 공자님의 문을 찾아 들어간 사람이 적으니<득기문자혹과의得其門者或寡矣> 대부 숙손무숙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도<부자지운夫子之云> 또한 당연한 것이겠지요.<불역의호不亦宜乎>”
이 대목은 제자 자공이 스승을 바라보는 시각이지만 그럼에도 이 문장은 후학들이 어려서부터 어떻게 얼마만큼 공부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좋은 경구다. 공자님은 공부를 일찍시작하신 분이 아니시다. 15세 때 공부에 뜻을 두셨다 하셨다. 그리고 42세쯤에 책을 쓰시고 또 71세쯤에 끝 책인 춘추 책을 쓰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