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마을의 품격 3 - 공덕 마을과 공덕산
■ 모시장터 / 마을의 품격 3 - 공덕 마을과 공덕산
  • 최용혁 칼럼위원
  • 승인 2023.05.25 10:29
  • 호수 11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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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혁 칼럼위원
최용혁 칼럼위원

공덕산, 마서면 신포2리 공덕마을의 뒷산, 도고산으로도 불린다. 풍수란 말은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줄임말인데 말 그대로 북서쪽 바람을 막고 마을의 지하수를 간직하는 기능을 제대로 하는 마을의 주산(主山)이다.

가까운 여러 마을 사람들의 산책길이자 운동 코스이기도 했던 공덕산 등산로를 본격적으로 정비하기 위해 20여 년 전 마을 남자들은 새벽마다 예초기를 메고 산에 올랐다. 여자들은 등산로 주변과 마을길에 꽃을 심고 가꾸었다. 농촌지역 광역 마을 만들기 사업의 하나로 공덕 마을 주민들은 공덕산 등산로 정비를 선택한 것이다.

우거진 풀숲과 나뭇가지들을 헤쳐 가며 일주일 정도 비지땀을 흘렸다. 때는 한 여름, 마을 이장님의 작업 지시에 따라 산길을 만들어가며 조금씩 오르락, 가끔씩 내리락, 입에는 게거품을 하얗게 물었다.

앞서가던 이장님의 입에서 , 이 쪽 길이 아닌가벼!”하는 나폴레옹의 명언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어이쿠! 무릎이 꺾이기도 했다. 쉴 참, 막걸리 한 잔씩들 하면서 이 바쁜 때 멀쩡한 사람이 할 짓이냐?”고 투덜대기도 했지만, 서로에 대한 격려라는 것을 모두들 잘 안다.

예초기를 메고 손에는 아이스크림 하나씩 들고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우리는 힘들고, 말도 안 되는 세상을 잘 다독이며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착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근방 마을 사람들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공덕 마을 등산로 정비사업의 결말은 어느 소설 못지않게 허망하다. 공덕산 정상 부근의 산() 주인이 뒤늦게 나타나고, 몇 번의 말싸움이 있었고, 시비 끝에 당시 이장님이 홍성 법원까지 몇 번을 들락거렸다. 나는 뒤를 돌아서 허망하게 서 있는 형님, 아저씨들의 고운 눈썹을 보았던 것 같다.

산 주인은 입산을 금지했으며, 마을 주민들이 늘 해오던 운동과 산책을 재산권에 대한 침범으로 간주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 적당한 협의 없이 산을 그저 마을 공용의 자산, 또는 태어날 때부터 원래 있던 것 정도로 안일하게 생각한 결과이기는 하다. 그러나 산을 비롯한 자연의 모든 기능까지 반드시 누구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공덕산과 함께 평생을 살아 온 마을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산 주인의 본새가 고약하다. 산주인이 읍내를 가기 위해 또는 벼들이 자라는 들녘으로 내려와 어슬렁거리다가 동네 앞 내 논을 한 발자국이라도 밟기만 한다면 너 어디 보자.’하기로 작심했지만, 명줄이 길었는지 용케 내 땅만 잘 피해 다녔다.

해발 87M. 이렇게 밝히고 나니 약간 부끄러운 고백을 한 것 같다. ‘에게, 100m도 안 됐어?’하는 환청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이 산 정상을 가족들과 딱 한 번 등산처럼 올라가 본 적이 있다. 가을 나락이 익어가는 일요일 오후, 날 좋은데 애들 데리고 어디라도 다녀오지, 하는 핀잔 끝에 오후 늦게 공덕산 등반을 결심했다. 김밥을 싸고 등산화를 신고 길을 나섰다. 집에서 마을회관 거쳐 신포교회까지 걸어서 10. 신포교회 앞 공덕산 들로 불리는 넓은 들판을 지나 여우네 도서관 거쳐 여우고개 등산로 입구까지 걸어서 20. 자 이제 등산 시작. 작은 산이지만 얕지 않았다. 대략 다섯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정상까지 30. 산내들과 기산, 화양의 넓은 들에서 익어가는 벼들이 눈앞에 장관처럼 펼쳐졌다.

공덕산 정상을 허물고 부수어 평평하게 만든 뒤 수련원을 짓겠다는 목적으로 토석 채취 사업이 신청되었다. 마을 어른들은 정신 나간 짓이라고 표현한다. 마을 회관 윷 노시는 아주머니들도 망측한 일이라고 한다. 사업 신청만으로도 마을은 어떤 공격을 받은 것처럼 충분히 어수선하지만, 공덕 마을의 품격은 공덕산과 함께 지켜진다는 것을 마을 주민들은 대체로 잘 알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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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영 2023-06-11 22:25:11
옛날 어릴적 학교 끝나면 도고산에서 즐겁게 놀던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게 해주세요. 지금은 주변마을을 잘 품어주고 있는 도고산 ! 고맙고 지켜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