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태어나 평생에 걸쳐 천착穿鑿할 거 하나를 들라면 아마도 공부 외에는 없으리라. “하고많은 것이 천지에 널렸거늘 하필 공부란 말인가”라며 혹자는 이맛살을 찌푸리기도 하겠지마는 그럼에도 공부를 하면 거기에 따르는 이익이 눌러 흔들어 넘쳐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어려서는 이 사실을 모른다는데 악마의 미소가 있다. 공부에 관한 한 천하에 둘도 없이 미련하다<삼야노參也魯 증삼을 멍청하였다. 논어선진편11-17>는 꾸지람을 들은 증자는 포기하지 않고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글을 읽고, 목이 쉴 때까지 글을 읽고, 혀가 갈라질 때까지 글을 읽었다고 전한다. 그야말로 전설 같은 인물이다. 그는 세 가지를 스스로 반성하는 채찍으로 삼은 바 있다.<논어 학이편1-4 문장>
“증자는 말한다.<증자왈曾子曰> 나는 하루에 세 가지로 나를 살피는데<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 남을 위해 일을 할 때 열심을 다해 하지 않았는가를 살피며<위인모이불충호爲人謀而不忠乎>, 벗과 사귐에 있어서 믿음을 주지 못했는가를 살피며<여붕우교이불신호與朋友交而不信乎>, 내가 배운 것을 온전히 알지도 못하면서 남을 가르친 것은 아닌가를 살핀다<전불습호傳不習乎>”
증자는 일생을 공부에 명운을 걸고 승부수를 띄운 인물이다. 그는 스승 문하에서 두 번에 걸쳐 출학당하는 수모를 겪었음에도 끝까지 버티고 견뎌서 오로지 공부만으로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결국 공자님의 손자이신 술성述聖 자사자子思子를 가르쳐 그 문하에서 아성 亞聖 맹자孟子가 나오게 한 종성宗聖이 되신 분이다.
많은 이들이 공부하기를 싫어한다고는 하지만 세상에는 공부에 명운을 건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차성次聖 순자荀子도 공부로 백천간두의 삶을 뚫고나간 인물이다. 대나무 가지 꼭대기에 서 있는 처지인 간두지세竿頭之勢의 인생에서 오로지 공부만으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수를 둬서 걸출한 인물이라는 일세풍미를 거머쥔 인물이다.
사마천 사기 맹자孟子·순경열전荀卿列傳에 따르면 순자는 조趙나라 사람으로 갓 쉰 살에 이르러 제齊나라 직하학사稷下學舍에 입학하여 ‘직하의 학사學士’가 되어 공부한다. 직하학사稷下學舍는 전국시대 중기 제齊나라 위왕威王 때 지어져 선왕宣王 때까지 운영되었는 바 제나라 수도 임치臨淄의 13개 성문 가운데 남쪽 문인 직문稷門 아래 직문稷門과 치수淄水를 사이에 두고 직산稷山이 바라다보이는 땅으로 대략 2만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이를 직하학사稷下學舍라 했고, 천하인재들이 여기로 몰려와 공부하는데 이들을 일러 ‘직하의 학사學士’라고 했다. 천하에서는 이들을 존경하고 각 나라에서 고위관료로 발탁하기도 했다.
맹자도 한때 이곳에 머물기도 했고 순자는 학문이 뛰어나 제사를 책임지는 제주祭主를 세 번씩이나 맡았다고 전한다. 순자의 공부법이라는 것이 별거 아니다. 황동규 시인의 ‘삼남에 내리는 눈’ 제하의 싯구처럼 ‘무식하게 무식하게’이다. 다만 지치거나, 쉼이 없이, 하라고 주문한다.
순자 제1편 권학편에서 순자는 말한다.<순자왈荀子曰> “반걸음 일 지라도 쌓이지 않으면<부적규보不積蹞步> 천 리를 갈 수 없으며<무이지천리無以至千里>, 작은 물줄기 일 지라도 쌓이지 않으면<부적소류不積小流> 장강과 황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무이성강하無以成江河>”
얼마나 가슴 뛰는 말인가. 세상천지 누가 공부 방법론에 있어서 공부의 방법에 대해 이토록 진정성을 가지고 세밀하게 말해준 이가 몇이나 있으랴. 순자의 공부법은 무조건 스승을 뛰어넘어야한다는 청출어람 공부법이다.
그렇게 공부한 제자로는 크게 두 사람을 칭하는데 이사와 한비자가 그들이다. 이사는 진나라 왕 영정을 도와서 그를 진시황제로 올려놓은 불세출의 인물이다. 한비자는 심각한 언어장애인 말더듬이였으나 한비자라는 책을 써서 정치학의 교과서를 세상에 내놓은 인물이다.
순자 권학편의 첫 대목은 이렇게 말한다. “군자는 공부를 중단하면 안된다. 군자는 널리 배우되 하루에 세 번씩 반성한다면 지식은 더 밝아질 것이며 행동은 허물이 없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