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 노희두 열사의 정신 길이 이어가야
사설 / 노희두 열사의 정신 길이 이어가야
  • 뉴스서천
  • 승인 2024.04.25 07:48
  • 호수 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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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315일 이 땅에서 치러진 부정선거를 본 영국 런던타임즈의 한국 특파원은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기를 희망하기보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편이 낫다고 타전했다.

그러나 그 기자는 4.19 혁명을 보고 나서는 마치 이 나라가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1945815일과 같았다. 스스로 자유로운 몸이 된 것이다. 역사적인 지난 한 주일은 외국의 비평가들이 생각했던 것과 달리 한국인이 자유정부를 향유할 자격을 가지고도 남음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런던 타임즈, 427)고 말했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로 몰고 간 한국의 4월 혁명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터키 청년학생과 시민들은 우리의 4월 혁명을 지켜보던 끝에 428일 독재자 멘델레스를 축출하기 위한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다.

우리 국민의 긍지와 자부심이 한국 국민들보다 어찌 못하랴그들은 이스탄불 거리에 나타난 계엄군 탱크 앞에 연좌한 채 한국 학생들의 거룩한 희생을 찬양하는 구호를 외쳤다.(AP 통신, 428)

또한 4월 혁명은 드골정부를 주저앉힌 프랑스 학생운동과 미국 대륙을 휩쓴 대학생들의 베트남전쟁 반대운동 등 세계 각국을 휩쓴 학생운동의 서곡이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대한민국 헌법 전문의 첫 부분이다. 대한민국은 4.19 정신을 계승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4월 혁명을 주도한 사람들 가운데 우리 고장 출신의 노희두 열사가 있다. 그는 서천초·, 장항농고를 나와 당시 동국대학교 법학과에 재학중이었다. 그는 경찰 발포의 첫 번째 희생자였다.

4.19혁명이 일어난 지 10년 후 서천초등학교에 근무하던 동문들이 위령비 앞에서 술잔 하나 올리는 것으로 시작 노희두 열사에 대한 추모제가 시작됐다. 1975년부터 동국대학교서천동문회에서 주관해 매년 추모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동국대서천동문회원들도 인원이 줄었고 연로해 노희두 열사 추모식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태이다. 군이 나서야 한다. 매년 예산을 세우고 사회단체에 의뢰하는 방식이면 될 것이다. 노희두 열사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일을 서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이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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