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우리에게 없는 것
■ 모시장터 / 우리에게 없는 것
  • 김윤수 칼럼위원
  • 승인 2024.05.23 08:05
  • 호수 11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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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 칼럼위원
김윤수 칼럼위원

4월 중순경 현대미술의 성지’, ‘섬 전체가 미술관이라 불리는 일본 나오시마(直島), 건축물 자체가 예술품이라는 데시마에 다녀왔다. 나오시마는 일본 중남부 가가와현에 속한 인구 3,117, 여의도 면적의 섬이지만 관광객, 건축가, 미술가 등 연간 50만여 명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특히 2010년부터 3년마다 나오시마와 인근 주변 12개의 섬에서 열리는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베네세 트리엔날레)의 해에는 연인원 100만 명 이상이 몰리고, 100억 엔이 넘는 경제효과를 낸다고 한다. 나오시마를 찾는 관광객은 광역자치단체별 외국인 관광객 총증가율(2012-2019)’16배로 전국 평균의 약 4(2020년 관광백서’(일본관광청)), 가가와현 소득 1위의 섬답게 가는 곳마다 외국인 방문객으로 넘쳤다.

나오시마는 한국의 다도해처럼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그러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용도페기된 제련소와 쓰레기, 산업 폐기물들로 방치된 상태였다고 한다. 환경파괴로 버려진 섬을 30여 년에 걸쳐 세계적 관광지로 바꾼 사람은 일본 베네세그룹 오너 후쿠타케 소이치로이다. 1945년생인 그는 50대에 소멸위기의 나오시마를 디자인과 예술의 섬으로 바꾸기 위해 섬의 일부를 매입하고 개인적으로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1992년 나오시마에 갤러리와 호텔을 겸한 베네세하우스 뮤지엄을 시작으로 1994년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등 섬 곳곳에 현대미술을 설치했다. 그리고 주민을 위한 공공 건물들을 짓고, 주민과 수천 번의 회의를 하면서 주민과 함께 하우스 아트 프로젝트를 만들고 세토우치 국제예술제의 총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다.

소이치로 회장은 1995년에 회사 이름을 베네세(Benesse)’로 바꾼다. 베네세는 라틴어로 (Bene) 산다(esse)’는 뚯이다. 그는 나오시마 개발의 목적은 모두가 잘 사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며 함께 잘 사는사람이 있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지론을 펼치며, 나오시마 개발의 주제를 자연과 건축, 예술의 공존으로 잡는다. 예술을 알지 못하는 인재는 필요치 않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는 그는 예술을 통해 외지인들을 끌어들이고, 이들과의 교류 속에서 지역 주민들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그런 모습을 보며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나오시마의 미야우라 항의 선착장에 내리면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빨간 호박, 반대편 방향의 츠츠지소 해변에는 쿠사마 야요이의 노란 호박이 손님을 맞는다. 2004년에 개관한 지추(地中) 미술관은 자연훼손을 막기 위해 건물을 지하로 배치한 세계 최초의 지하미술관이다. 빼어난 건축물과 예술품, 자연경관, 입구의 정원까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실제로 지추 미술관이 건립된 때부터 나오시마를 찾는 관광객은 연간 1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2010년에 개관한 이우환 미술관은 내부도 좋았지만 야외 설치물들이 환경과 더불어 매우 멋있었다. 소이치로 회장은 이 모든 작업을 어떠한 제약 없이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에게 맡겼다. 안도는 2025년 건립될 새 미술관까지, 나오시마에서만 10개의 건축물을 관장했다고 한다.

나오시마에도 고령화율은 높다. 그러나 깨끗한 섬 안을 걸어다니다 보면 아기자기하게 잘 꾸민 집들과 정원을 구경할 수 있도록 대문을 열어놓고 있다. 개인적으로 만난 할아버지들의 친절하심과 배려심에 무한 감동을 받기도 하였다. 나오시마에는 주민들이 소이치로 회장에게 건의하여 함께 만든 아트 하우스 프로젝트가 있다. 6개의 아트 하우스를 보물 찾기하듯이 찾아다니며 관람을 하였는데, 눈이 확 뜨이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나오시마 미야노우라항에서 데시마 이에우라항에 도착한 후 버스를 타고 데시마 미술관에 갔다. 탁 트인 바다를 눈 앞에 두고 언덕배기에서 하차하자 물방울 모양의 하얀 콘크리트 건물이 보였다. 예약 시간에 맞춰 입장을 하면, 오솔길을 한바퀴 돌아서 건물 입구에 도착한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면 건물 양쪽으로 타원형의 둥글고 큰 구멍으로 바람이 불고 햇살이 비친다. 바닥의 작은 구멍들에선 물이 조금씩 올라온다. 물방울들이 낮은 곳으로 모여 흘러가는 모습을 보며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노라면 마음은 절로 정화된다. 언덕 아래로 한참을 걸어 내려가면, 깨끗하고 조용한 해변 끝에 세계의 방문객들이 기록해둔 심장 박동 소리를, 어둠 속에서 듣는, 이색적인 심장 아카이브관이 있다. 아름다운 섬을 오염원으로 방치했던 정부에 분노하며, 현대미술로 정부와 싸웠다는 소이치로 회장. 공익 자본주의를 실천하는 그의 덕분에 즐거운 예술 여행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기업인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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