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우영의 고전산책 / 아들 된 자는 천하를 꿈꾸며 공부한다
■ 송우영의 고전산책 / 아들 된 자는 천하를 꿈꾸며 공부한다
  • 송우영/서천서당 훈장
  • 승인 2024.06.06 10:30
  • 호수 1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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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영
송우영

예로부터 아들에게는 세 가지 지켜야 할 숙명이라는 게 있다. 첫째 아버지가 남겨준 땅을 줄여서는 안된다.<부지유한敷地有限> 둘째 천하를 집으로 삼아야 한다.<천하위가天下爲家> 셋째 아들은 집에서 밥 먹지 않는다.<불사어가不食於家>

아들로 태어난 이상 부모가 남겨준 재산을 쓰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그것은 건드려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아들로 태어난 이상 아들이 살아야할 집은 천하이다. 그래서 아들은 어려서부터 천하에 뜻을 두고 공부하는 거다. 아들로 태어난 자는 17세가 지난 다음부터는 집에서 밥먹는 게 아니다. 어려서 공부를 많이 해두면 천하의 현자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찾아오게 되어있다.

논어 자로 13-4문장에 이런 말이 기록되어있다. 공자님의 제자 번지가 농사를 배우려 하니 공부를 많이 해 두라는 의미로 말을 한다. 공부를 많이 해두면 나라 안 사방에서 백성들이<부여시즉사방지민夫如是則四方之民> 자기 자식을 포대에 싸서 업고서라도 찾아온다.<강부기자이지의襁負其子而至矣> 그들이 찾아올 때는 반드시 집지執贄의 예물을 들고 오는데 서로가 부담 갖지 않는 한 끼니 정도의 식사량이 그것이다. 곧 밥 먹고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예물로 이를 삼가는 예절이라는 의미의 소례蕭禮라 한다.

이 지경에 이르려면 어려서부터 스승을 찾아가 경전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한 때이지만 옛사람에는 이렇게 살았던 사람들도 있었다. 어려서는 학문이 아닌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저 읽고 쓰고 외우고를 무지막지하게 반복하는 것이다. 진서晉書 사곤전謝鯤傳에 따르면 동진의 대장군 사도 왕도王導의 친형인 왕돈王敦은 어려서 공부 많이 하기로 소문난 자로 어른이 되어서는 두도杜弢의 난을 평정한 후 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의 벼슬에 올라 식후에 늘 위무제武帝의 악부가樂府歌 한 토막을 읊었다 하는데 늙은 준마는 마판에 엎디어도<노기복력老驥伏櫪> 뜻은 천리에 있나니<지재천리志在千里> 열사는 늙어도<열사모년烈士暮年> 장부의 마음은 그치지 않노라<장심불이壯心不已>

위 무제는 다름아닌 소설 삼국지 등장인물로 조조曹操인데 조조는 명문가가 아니다. 같은 또래의 벗 원소나 원술은 대대로 고관대작의 명문가이고 유비는 비록 몰락은 했으나 그 가문은 황제의 가문이다. 그러나 조조는 선대가 환관의 양자로 들어간 그야말로 환관 집안의 자식인셈이다. 이에 조조는 어려서부터 오로지 공부만으로 그 돌파구를 삼았던 것이다.

이런 조조를 알아본 인물이 대학자 교현橋玄이다. 조조와 교현의 나이 차를 따진다면 대략 4-50년 차이다. 17세 무렵의 조조에게 교현이 자신의 집안을 부탁을 하면서 했다는 말이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무제기武帝紀에 기록된 바 천하가 장차 난세가 될 터이니<천하장란天下將亂> 세상을 구할 인재가 아니면<비명세지재非命世之才> 구제할 수 없을 것일세.<불능제야<不能濟也> 천하를 평안케 할 사람은<능안지자能安之者> 그것은 그대에게 달려있네<기재군호其在君乎>

당시 교현은 조정에서 삼공三公의 벼슬로 국정을 운영하는 직위였다. 그런 그가 무명無名의 축에도 못드는 어린 조조에게 이런 평가를 했다는 것은 다름아닌 조조가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소문이 천하를 덮어서이다. 하루는 교현이 벗 허소許邵를 찾아가 조조의 관상을 봐달라 부탁했다. 허소는 조조를 만나 그의 관상을 말해주는데 치세에는 능신이요<치세지능신治世之能臣> 난세에는 간웅이라<난세지간웅亂世之姦雄> 조조는 이 말을 기쁘게 여겼다고 책은 기록한다.

본래 공부라는 것은 어려서의 공부가 평생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도광양회韜光養晦라 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르는 것을 말한다. 또 정관기변靜觀其變이라고도 말한다. 여기저기 안가는데 없이 나대지 아니하고 묵묵히 지켜보면서 그 변수를 기다린다는 말이다. 이는 모두가 다 어려서의 공부 자세를 아우르는 말이기도 하다. 아들이든 딸이든 태어남은 인간의 영역 밖의 일이다. 이는 논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아들로 태어남에는 아들로서의 공부가 있다는 말이다. 아들의 공부는 천하에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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