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라는 것은 글을 읽고 쓰고 외우는 것을 말한다. 혹자는 시간 절약을 위해 여겨 잠자는 시간도 반으로 줄이고 밥 먹는 시간조차도 아까워 밥을 국에 말아서 훌쩍 마셔버린다거나 비벼서 먹는 것으로 시간을 단축하기도 한다.
옛 선비들의 공부라는 것은 그 기본을 한자를 외우는 공부에서부터 시작된다. 공자님의 손자 되시는 자사子思공께서는 노나라 군주 목공穆公의 어린 시절 사부가 되신 적이 있으셨는데 그런 가르침을 일러 ‘필경지학畢景之學’이라 했으니<참조-공손추 장구하4-11> 그 뜻은 하루종일 공부만 했다는 말이다.
당시의 공부라는 것은 스승의 가르침을 듣기보다는 제자 된 자가 책과 글씨를 모조리 읽고 쓰고 외우는 게 전부라 하니 그렇게 10년에 걸쳐 암기해둬야 할 글자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수나라 당나라에 이르러는 대략 35만 자쯤에 이른다. 그리고 여기에 기본적으로 암기해야 할 사서 육경에 해당되는 책들이 있고 또 별도로 읽어야 할 책들이 있다. 이는 모두가 한자가 기본으로 익혀있지 못한다면 읽어낼 수 없는 구조이며 어려서부터 이 정도로 공부가 되어있지 못한 사람은 평생에 걸쳐 공부 근처에도 가서도 안된다. 당시 사회가 그 정도의 공부를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시 짓는 것을 예로 든다면 요즘에는 한시를 지음에 옥편도 참고하고 규장전운도 꺼내보며 압운을 찾아 맞추기도 한다마는 당시에는 누구든 운자만 주면 즉석에서 오언절구든 칠언배율 시이든 시가 술술 나왔다. 그만큼 한자에 대한 기본 공부가 되어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부는 어려서부터 공부에 뜻을 두어야 하고 그 뜻에 배반하지 않는 혹독한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공부의 시작은 자신과의 싸움에서부터다. 사람은 누구나 다 놀고 싶고 쉬고 싶고 편해지고 싶어한다. 공부는 이러한 것들을 거부한다. 논어 양화17-22문장에 공부에 관한 공자님의 일침이 한 대목 기록되어있다.
“공자님 말씀에<자왈子曰> 종일 배부르게 먹으며<포식종일飽食終日> <공부에> 마음쓰는 바가 없거늘<무소용심無所用心> 그런 자는 참 어렵도다<난의재難矣哉> 그럼에도 있어서는 아니됨은<불유不有> 박혁하는 자이니라<박혁자호博弈者乎바둑이나 장기두는> 그렇게 라도 하는 것이<위지爲之> 똑똑하다고 여기는가.<유현호猶賢乎> 그만 두거라<이已>”
이를 미루어 공자님의 공부법에 있어서 중요한 것 하나를 들라면 잡기에 능하지 말라는 거다. 오로지 공부만 하라는 게 공자님의 가르침이다.
어려서 이렇게 공부한 이가 우계牛溪 성혼成渾이다. 그의 아버지는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으로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에게 사사했으며 기묘사화로 인해 벼슬을 단념하고 동네 훈도로 아들 성혼을 비롯해 마을 몇몇 학동을 가르쳤다 하는데 이로 인해 가계는 말할 수 없이 가난했다 전하며 한창 성장기인 우계는 제대로 먹지 못하여 크고 작은 질병을 달고 살았다하는데 우계집牛溪集권卷3 년보年譜에 따르면 17세 나이인 1551년 몸이 아파서 복시覆試에 응시를 못할 정도였다 하니 이 일로 과거를 단념하고 휴암休菴 백인걸白仁傑에게서 상서尙書를 읽었다한다. 아마도 우계는 집안이 가난한 탓에 너무 어린 나이에 먹는 것은 부실한데다 몸을 많이 써서 병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고 짐작해본다.
노년에 이르러서도 허리가 아파서 꽤 긴 세월을 누워만 지냈다 한다. 암튼 이렇게 기본 공부가를마치고 나면 학문學文의 공부를 하는데 흔히 육경<시경, 서경, 예경, 악경, 역경, 춘추경,>의 공부를 말함이다. 논어학이편1-6문장은 이렇게 기록한다.
“공자님 말씀에<자왈子曰> 자녀된 자는 집에서는 효하며<제자입즉효弟子入則孝> 집 밖에서는 공손하며<출즉제出則弟> 삼가고 믿음이 있어야 하며<근이신謹而信> 널리 무리를 사랑하며<범애중汎愛衆> 인한 자와 친하며<이친인而親仁> 이러한 것들을 행하고도 힘이 남으면<행유여력行有餘力> 글을 배울 것이니라<즉이학문則以學文>”
학문學文의 시간은 다소 늦고 빠를 수도 있겠으나 읽고 쓰고 외우는 정도의 공부라는 것은 어릴 때 곧 빠를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