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 박광배 시집 ‘서천가는 길’
■ 책소개 / 박광배 시집 ‘서천가는 길’
  • 허정균 기자
  • 승인 2024.09.10 15:42
  • 호수 1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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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전편에 담겨있는 ‘근현대 민중 생활사’
▲시집 표지
▲시집 표지

서천 사람 박광배 시인이 시집을 냈다. ‘도서출판 상상인의 '상상인 시집 58권'이다. 어쩌다 고향에 오면 이곳저곳 툭툭 다니며 떠올리던 생각들이 시집으로 정리돼 나온 것이다.

시집에는 화양뜰 어름 노씨 집성촌에 정착한 증조할아버지가 나오고, 동학꾼들이 마을에 들어온 이야기가 나온다.<家傳> 떠돌다 고향집에 가면 할매 모시 째다 말고 내 새끼 내새끼하면서 토닥였다.<고향> 소년은 길산장에서 엄마랑 함께 먹었던 털이 붙어있던 돼지비계가 들어간 자장면을 노년이 되어서도 잊지 못하고 있다.<우울해지면 먹는 약>
시집에는 중학생 때 소풍가서 본 목은 이색의 초상화가 나오고<문헌서원>, 서천군 마산면 관포리 사람 김진규가 등장하는 영화를 길산 옛 쌀창고에서 보던 기억이 담겨있다.<영화배우 김진규> 신이 내린 듯 북을 움직이며 모시짜기를 하는 재뜸 재종조할매 이야기가 나오고<재뜸 재종조할매네>, 장항-군산 뱃전에서 구경하던 장님 악사 모습이 등장한다.<장님 악사>

왜정 때 홍성에서 순사질 하다 조선놈이 왜놈 개노릇을 하는가?” 한 마디에 순사질 더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시들부들 반편이가 된 종조할아버지.<종조할아버지> 어느 한 해 호열자가 돌아 동네가 쑥밭이 된 이야기.<초분草墳> 70년대 들어 본격화 한 이촌향도’,서울 빌딩 사이로 바라보는 가을 달에 고향 생각을 더듬는다.<서울, 돌아갈 수 없는>
책장을 넘기며 60편의 시를 더듬다 보면 빛 바랜 흑백영화의 한 장면들이 휙휙 지나간다. 당시 우리나라 대부분의 농촌이 그러했을 것이다. 이를 곱씹어 정리하면 전국 어느 농촌으로도 확대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닌 '서천의 근현대 민중 생활사가 되어 오늘의 우리 실존을 형성한 원형질을 추적하게 한다.

 

길산천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할머니는 나씨 가문으로 시집간 큰딸 보러
떡 보따리 이고 막내고모를 업고
천방산을 바라보며 이 길을 하염없이 걸었을 것이다.
갈밭 길을 걸으며 마흔 세 살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선린학교 태극기 사건에 연루되어
초주검이 된 큰고모부 옥바라지하러
할머니는 애달복달 장항선 열차 타고
고모네 신혼집을 오르내렸다 한다.
<서천 가는 길> 부분

서천에서 태어나 자란 박광배는 1984년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시선집 <시여 무기여>용평리조트1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 <나는 둥그런 게 좋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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