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상’ 전승 문화유산 되살린다
‘보부상’ 전승 문화유산 되살린다
  • 허정균 기자
  • 승인 2024.10.03 17:14
  • 호수 1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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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주민들, 3일 고유제 이어 4일 공문제
▲보부상 묘에서 고유제를 지내는 모습
▲보부상 묘에서 고유제를 지내는 모습
▲보부상 묘에서 고유제를 지내는 모습
▲보부상 묘에서 고유제를 지내는 모습
문서와 직인을 위패 대신 모시고 지낸 공문제
문서와 직인을 위패 대신 모시고 지낸 공문제

우시장과 모시시장으로 번성했던 판교에 1970년대까지 보부상 조직이 있었다. 판교 주민들이 이러한 전통을 되살려 판교 시장 활성화와 지역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보부상이란 보상(褓商)과 부상(負商)을 총칭하는 명칭이며, ‘부보상(負褓商)’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전통사회에서 시장을 중심으로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행상을 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교환경제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중간자 역할을 했다.

보상은 주로 기술적으로 발달된 정밀한 세공품이나 값이 비싼 사치품 등의 잡화를 취급한 데 반하여, 부상은 주로 일용품이나 가내수공업품을 취급했다.

또한 보상은 보자기에 싸서 들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판매했고, 부상은 상품을 지게에 얹어 등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판매했다. 이에 따라 보상을 봇짐장수’, 부상을 등짐장수라고도 했다.

이들은 대개 하루에 왕복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를 표준삼아 형성되어 있는 시장망을 돌면서 각지의 물화(物貨)를 유통시켰다. 그러나 대부상·대보상들은 수운(水運)과 우마차로 다량의 상품을 일시에 운반, 판매하기도 했다.

부상단(負商團)이 조직된 것은 조선 초였다. 이성계(李成桂)의 조선 개국에 공헌했기 때문에 그 조직을 허용했다는 설과 상류 계층과 무뢰한의 탐욕으로부터 그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했다는 설이 있다.

한편, 보상이 언제부터 조직을 갖게 되었는지는 속단하기 어려우나, 그것이 전국적인 조직을 갖게 된 것은 1879(고종 19) 9월에 발표된 한성부완문 漢城府完文>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이전부터 지역적으로 각기 정해진 규율과 두령인 접장(接長)의 소임이 있어서 군료(群僚)를 통솔해 왔으며, 산재한 조직을 전국적인 상단(商團)으로 묶어 소규모 자본의 행상을 규합했음을 알 수 있다.

부상과 보상은 각각 별개의 행상조합으로 성장하였으나, 1883년에 혜상공국(惠商公局)을 설치하여 보상과 부상을 완전 합동하게 하였다. 1885년에는 다시 상리국(商理局)으로 개칭하는 동시에 부상을 좌단(左團, 左社), 보상을 우단(右團, 右社)으로 구별하고, 역원(役員)만은 상리국에 통합, 단일화시켰다.

보부상의 조직에서 가장 주목하여야 할 것은 민주적인 투표에 의해 임원 선거를 했다는 사실과 안건을 심의하기 위해 정기적인 총회를 개최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과 더불어 일제의 보부상 말살 기도에 따라 전국의 보부상 단체들은 거의 소멸되었다. 현존하는 보부상 단체로는 충청남도의 부여·한산을 일원으로 하는 충청우도 저산팔구의 보부상단과 예산·덕산을 중심으로 하는 예덕상무사(禮德商務社)가 있다.<다음 백과사전 참고>

▲3인의 보부상 묘 묘비(전면)
▲3인의 보부상 묘 묘비(전면)

판교에 있었던 부상단은 1970년에 건립한 령위 채영선, 반수 홍재섭, 반수 정문보의 묘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판교면 복대리 산 27번지에 있는 이들 묘는 본래 따로 있었으나 판교상무우사에서 197010월 합장을 하면서 묘비를 건립했다.

(가칭)판교너더리보부상을 추진하고 있는 판교 주민들은 3일 오전 이들의 묘에서 고유제를 지냈다.
이들은 고유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전략>가칭판교보부상에서 우리 보부상의 정신과 전통을 예법에 따라 지켜나가고 이를 계승 발전시킴은 물론 판교의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고자 판교보부상의 전승문화유산을 전승 보존육성하고 이를 후대에까지 이어나가는 사업들을 지속적으로 시행해 나갈 것을 결의하고 선대 보부상의 정신을 따르고자 하는 모든 후학들이 적극 동참할 것을 서약하고 축원을 올리고자 합니다.<후략>”

▲3인의 보부상 묘 묘비 후면
▲3인의 보부상 묘 묘비 후면

3일 고유제에 이어 판교 도토리묵 축제가 열린 4일 오후 2시에는 판교시장 일원에서 저산팔읍상무사에서 공문제(보부상들이 총회 때 상무사의 공문을 모셔 놓고 올리는 제사)를 지내고 이어 신차영감 행차의 퍼레이드를 벌였다. 여기에 판교중학교 학생들이 보부상 복장을 하고 참여했다.

고유제와 공문제는 현재 활동을 하고 있는 사)홍산보부상보존회에서 맡아 진행했다.기획사 새움에서 주관하고 서천군과 판교이장단협의회가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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