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 뉴스서천
  • 승인 2002.04.25 00:00
  • 호수 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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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다. 단지 습관에 못 이겨 일기를 쓰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라도 일기를 쓰지 않으면 잠자리가 편하지 않았고 간단한 메모라도 남겨 나중에 다시 빈칸을 채우곤 하였다. 어렸을 때처럼 일기를 쓰지 않았다고 선생님께 혼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오늘도 그렇게 빈 공간을 낯익은 단어로 채우고 있다.
내게 있어 일기장은 내 가장 가까이 있는 친구였다. 풀기 어려운 문제도 한 장, 한 장을 채우고 넘기면서 그 친구와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 주곤 하였다. 그 친구와는 좀 더 근면하지 않았다는 생각이라든지, 학우들에게 억지를 부렸기에 그의 맑은 눈동자를 쳐다볼 수 없었던 일 등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서 이제껏 삶의 지팡이가 되어주신 분과의 영원한 이별, 그리고 그 슬픔까지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주위 분들은 환희보다 ‘왜 이리 부족했는지….’라는 후회가 더 많이 기록되어 있는 내 일기를 보면서 내가 일기와 친구로 지내는 것을 그다지 반기지 만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중학교 1학년 때 잠시 일기를 쓰지 않았던 기억도 있다. 그 전에 써온 일기가 선생님께 검사 받기 위해 쓰는 하나의 ‘숙제’로만 여겨졌던 까닭이다. 매맞고 싶지 않아서 쓰던 일기, 그래서 그 일기에는 진실이 담겨있지 않았다. 나의 가식과 욕망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이루어진 단어들의 묶음들로 인해 포장되어지기 일쑤였다. 그런가하면 지나온 날들의 어리석었던 추억을 가슴에 남기고 싶지도 않았다. 부끄럽고, 우둔했던 기억들이 지면을 통해 되살아나는 것이 괴로웠다. 남들과 비교해서 화려한 삶을 살지는 못했더라도 오히려 그들과 ‘비교’의 대상이 되었던 순간, 순간들을 사랑할 수는 없다는 짧은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일기를 쓰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일기를 쓰면서 행복을 느낀다.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나만의 생활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즐겁다. 그 일기장 안에는 가식이 없기 때문이다. 삶에 있어 느낀 생각을 솔직하게, 담백하게 풀어썼기 때문이다. 누가 내 일기장을 쳐다보면서 즐기거나 나무라지도 않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임을 알기에 어렸을 때 ‘3월 20일 수요일 날씨 맑음’이라고 쓰기 시작해서 ‘앞으로는 모자람이 없도록 노력해야겠다’로 끝이 나던 일기부터 지금의 일기까지 읽다 보면 재미가 있고 정겨운 것이다.
이렇듯 지난날의 일기를 들추어보면 이런 향기를 느낄 수 있었고 그 속에서 조금이나마 변해버린 나를 발견할 수도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기쁨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와 지금의 사고가 틀리고 그렇기에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내가 발전했다는 것을 느끼게도 되었다. 무엇이 불행이고 행복인지, 사랑이고 질투였는지도 말이다. 또한 내 삶을 아름답게 수놓았던 많은 친구들, 선생님들의 마음도 옛 일기를 들추어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제와 오늘의 일기를 앞으로 다가올 ‘오늘’ 읽었을 때 나는 그렇게 또 변해있을 것이고 역시 그 자체를 즐길 것이다. 내가 삶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 그 속에는 그대로 담겨있을 테니까.
이처럼 일기를 쓰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지라도 이 세상은 바로 나를 통해서 펼쳐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속에 우러나오는 사랑은 억지로 보아서는 느낄 수 없는 사랑이리라. 일상 생활에서 묻어나는 아름다움을 통해서만이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리라.
일기를 쓴다는 것이 그래서 좋은 것 같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안 만큼만은 정직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기에, 자신과의 사고를 통해 어제와 오늘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기억될 수 있는 초석으로 모자람이 없을 것이기에 말이다.
일기를 쓰면서 나는 어제와 오늘을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내일’ 내가 읽고 있을 ‘오늘’의 모습을 설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울리는 단 한 마디가 허공만을 울리는 일이 되더라도 그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리라. 오로지 자신과의 대화에서만이 가장 순수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음을 알기에 ‘습관’이 된 일기 쓰기가 더욱 정겹게 다가오듯이.
<양원준 / 한밭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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