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5주년 특별기고
농민, 그 웃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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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그 웃음이 아프다!
  • 뉴스서천 기자
  • 승인 2004.10.08 00:00
  • 호수 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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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혁
<서천군농민회 정책실장>

추석이 지나고 얼마 쯤 서천군 농민회는 농림부 장관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농림부 장관은 농민들이 논을 갈아엎으며 쌀개방 반대를 외치는 현실에 대해 뭔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장관의 표현대로라면 농민이 ‘자식과도 같은’ 벼를 갈아엎는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며 ‘농민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쌀산업발전 종합대책’, ‘쌀농가 소득안정방안’등의 정책 대안을 제시했다. ‘쌀협상 결과가 가시화 되면 그 영향까지도 감안하여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했다.

정부가 농업을 지키고 보호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음을 우리는 늘 안타까워했다. 더욱 커다란 문제는 농업을 바라보는 철학이 부재함을 우리는 늘 지적해 왔다.

그래서 UR협상 때 42조 투융자 계획, 10년간 119조원 투자 발표, 그리고 지금 또 이야기하는 ‘쌀산업 관련 대책’ 등이 농업과 농민의 진정한 요구를 외면한 사탕발림이라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 농민들이 모두 반대하는, 그리고 국민들이 지켜야 한다고 하는 쌀이 왜 수입되어야 하는가, 물가는 자꾸 올라만 가는데 수매가는 왜 4%나 떨어져야 하는가, 수매제를 폐지하면 쌀값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통일 이후의 농업을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외국에서도 다 시행하고 있는 자국 농산물 지원을 내용으로 하는 학교급식 조례안은 왜 그토록 WTO위반이라고 하는가 등의 문제에 대해 ‘용납’할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농민에게 이야기하는 희망과 농업 발전의 의지 사이에는 너무도 커다란 간극이 있어 보인다. 의지 없는 희망은 거짓이다.

서천군에 사는 나는 이런 질문을 서천군 지방자치단체와 우리 농민 조합원의 조직인 농협에 들이대고 싶은 것이다.

9월 10일 서천군 농민대회를 준비하면서 서천군농민회는 서천군청에 농민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이에 대한 답변을 서면으로 받아 보았다. 여러 내용 중 서천의 농업 발전을 위해 군과 농협과 농민이 함께 농정방향을 논의할 수 있는 협의체를 구성하겠다는 내용에 대해 우리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군과 농협과 농민이 서천지역의 농정 방향과 서천 쌀의 생산, 유통, 판매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5년, 10년을 내다볼 수 있는 계획을 세워 함께 전진하자는 것이 우리가 줄곧 요구해 온 바였다.

그러나 9월 10일 이후 더 이상의 내용을 들은 바 없다. 특히 서천군이 쌀 주산지로서 쌀수입개방 반대 운동을 어떤 식으로 진행하고 있는지, 서천군 쌀의 생산, 유통, 판매에 대한 대책을 군에서 어떻게 세우고 있는지, 농협은 농민을 위해 어떤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지, 협의체 구성에 대한 이야기는 왜 아직 제안조차 되지 않는지 우리는 9월 10일 군청의 답변 이후 별로 성의 있는 움직임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며 ‘농민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일’일수도 있지만 논을 갈아엎어서라도 우리의 준비를 보여 줘야 한다면, 농민의 의지가 더 필요한 일이라면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서천군 농민회는 그렇게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해 우리 농민들은 함께 눈물을 흘릴 것이다.

농림부 장관의 쓰나마나 한 편지를 읽은 몇몇 회원들의 첫 반응은 모두 하나같이 헛웃음이었다. 그 웃음에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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