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사람들 월남 이상재 선생 푸대접
서천사람들 월남 이상재 선생 푸대접
  • 이후근 기자
  • 승인 2004.11.26 00:00
  • 호수 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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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사람들의 월남 이상재 선생에 대한 푸대접(무대접)이 한 월남 연구가에 의해 또다시 지적됐다.

이런 지적은 ‘제4회 기벌포예술제’의 마지막 행사인 ‘서천주부독서회(회장 이정옥)’ 주최의 ‘월남 이상재의 시대정신과 서천사람들 삶’이라는 강연에서 제기됐다. 강연회 연사는 이상재 선생 관련 연구로 한국최초의 박사학위를 수여한 김명구(장신대학교수)였다.

김명구 교수는 강연에서 “연구를 위해 서천을 찾을 때마다 고속도로 나들목에 선생의 생가를 나타내는 표지판 하나 없는 것이 늘 아쉬웠다”며 “이상재 선생 생가를 방문해 보면 서천사람들의 이상재 선생에 대한 푸대접(무대접)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서천이 요즘 한창 갯벌체험, 해수욕장이다 해서 지역 홍보에 노력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며 “이상재 선생을 기리고 그의 업적을 선양하는 일이야말로 서천사람들이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선생이 기독교인인 관계로 한산 이씨 문중이나 지역에서 제한된 평가를 받는다면 이거야말로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라며 “월남 선생이야말로 한산면 종지리라는 벽촌에서 태어나 종교, 정파를 초월하는 위대한 사상가로 우뚝 선 존재다”라고 지적했다. 그 근거로 일제하 사회주의자들과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월남 선생은 실학에서부터 근대 민족주의, 기독교에 이르기까지 제 사상을 아우를 수 있는 위대한 사상가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구를 위해 서천을 찾으면서 선생의 생가지를 알리는 초라한 간판 이외에서는 선생과 관련된 것들을 발견할 수 없어 늘 안타까운 심정이었다며 서천사람들의 무관심을 꼬집기도 했다. 또 김 교수는 “YMCA=이상재이듯이 서천=이상재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김 교수의 월남 선생에 대한 푸대접을 지적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때문에  자칫 진부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수많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우리 지역에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월남 선생 선양사업이나 행사가 전무한 실정이다.

충북 옥천에서는 월북시인 정지용 시인을 기리는 ‘지용제’를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 또 통영에서는 ‘윤이상 음악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동백림 사건’ 관계자인 윤이상씨의 경우 아직도 국내 수구보수세력들에게는 금기의 인물이다.

여기에 이웃 홍성군도 같은 ‘동백림 사건’ 연루자로서 임종 직전까지 망명객의 입장이었던 고암 이응로 화백의  생가복원 등 선양사업을 이웃 예산군과 경쟁하면서까지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서천의 이상재 선생이 그분들보다 못하다는 얘기인가. 도대체 뚜렷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서천사람들의 이상재 선생에 대한 푸대접 아니 무대접의 근원은 어디일까.

‘어메니티(Amenity)’라는 생소한 단어를 곳곳에 써가면서 군정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군이나 이제까지 서천사람의 손으로 쓴 평전 하나 못 낸 처지를 감안하면 민·관이 공히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따라서 책임 또한 모두에게 있다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주부들의 모임인 ‘서천주부독서회’에서 해마다 이 문제를 일깨워 주고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그러나 문제제기 수준에 그쳐서는 아니 될 일. ‘월남 이상재’라는 좋은 문화 콘텐츠를 서천의 상징문화로 만들고 대표 브랜드로 키워나가야 한다.

천혜의 자연과 ‘영원한 청년정신’의 상징적 존재인 이상재를 결합한 ‘청년문화제’같은 것도 조심스레 제안해 본다.

이외에도 시인 신석초 선생, 이동백 명창 등 이 지역 출신이면서도 이유 없이 홀대받고 있는 위인들이 많다. 그들의 삶을 제대로 복원해내고 정신을 되살리는 일은 아이디어의 빈곤에 허덕이는 오늘의 서천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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