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와 ‘7인의 사무라이’
‘올드보이’와 ‘7인의 사무라이’
  • 뉴스서천 기자
  • 승인 2004.12.03 00:00
  • 호수 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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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경 진
<서천문화원 사무국장>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2003년 개봉)’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7인의 사무라이(1954년 개봉)’는 내용으로 보나 장르적, 시대적으로 보나 전혀 다른 영화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있다.

아주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올드보이’의 경우 칸느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7인의 사무라이’는 베니스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함으로써 각각 자국 영화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렸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이전에도 3대 국제영화제(베니스, 칸느, 베를린)에서 감독상 등을 수상한 경험이 있지만 본격적인 작품상은 처음이었고, ‘7인의 사무라이’를 시발점으로 하여 일본영화가 동양영화의 대명사로 세계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7인의 사무라이’는 100여년 간의 전쟁으로 인하여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16세기 일본 막부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농작물은 물론 여성까지도 남김없이 앗아가는 산적떼의 횡포에 참다못한 농부들이 마을을 지켜줄 용병으로 사무라이를 고용하기로 결정하고, 싼값(하루 밥 세끼)으로 살 수 있는, 몰락했지만 실력 있는 사무라이를 찾기 위한 여정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런 사무라이가 쉽게 찾아질 리 없다. 그러나 여러 우여곡절과 사건들 끝에 모아진 7인의 사무라이들이 결국 농부들과 함께 산적떼를 훌륭하게 막아낸다는 이야기이다. 사무라이들 간의 미묘한 심리적 갈등과 살아남기 위해서 비굴할 뿐 아니라 때로는 간교해져야만 했던 농민들의 심리 묘사가 아주 돋보이고, 비참한 상황들을 경쾌하게 이끌어나가는 유머와 상황 묘사가 탁월해 3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 걸작이다.

이 한 편의 영화로써 구로사와 아키라는 거장이 되었다. ‘올드보이’가 보여준 한국영화의 힘도 이와 못지 않다. 근친상간이라는 사회적 금기를 소재로 하여 작은 말실수로 벌어지는 비극을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성을 최대한 살려 만든 수작이다.

이 한 편의 영화로 인해 박찬욱은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감독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필자가 주목한 것은 이런 영화적 업적이 아니라, 원작 시나리오의 힘이었다.

‘7인의 사무라이’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자신이 몇 사람의 도움으로 직접 완성한 시나리오였고, ‘올드보이’는 비록 내용을 많이 각색했지만 일본의 츠치야 가론과 미네기시 노부아키가 그린 만화가 원작 시나리오다.

‘7인의 사무라이’의 상업적 예술적 가능성을 간파한 미국 영화자본은 곧바로 판권을 사서 율 브린너 등 초호화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황야의 7인’이라는 리메이크 영화를 만들어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

어찌 보면 박찬욱 감독의 능력은 만화 ‘올드보이’에서 그러한 가능성을 보았다는 데에도 있다. 물론 이미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보여준 바도 있지만 박찬욱 감독의 시나리오 작업능력을 의심하고자 말하는 게 아니다. 원작(Text)의 중요함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만화를 그릴 때도 시나리오가 필요하고 영화를 그릴 때도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영상문화컨텐츠의 시대라고 하지만 항상 뛰어난 영상의 후광엔 반드시 훌륭한 이야기글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훌륭한 이야기글이 나오기 위해서는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과 자유롭지만 철학적인 상상력이 필수이다. 그러므로 영화나 그림, 만화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문학인 못지 않게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응용학문만 인기가 있고 기초학문은 홀대받는 사회의 구조는 기초인문학의 몰락뿐 아니라 장차 응용학문마저도 사상누각으로 만들 수밖에 없음을 자각해야 한다.

한국영화의 미래를 창창하다고만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혹시라도 위 두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은 서천문화원으로 오시면 된다. 매주 토요일 3시에는 ‘서천 토요극장’이 개봉되고 그중 위 두 영화도 상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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