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힘과 열정의 힘
순수의 힘과 열정의 힘
  • 뉴스서천 기자
  • 승인 2004.12.10 00:00
  • 호수 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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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경 진
<서천문화원 사무국장>
오늘은 '이웃집 토토로'와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한다. 전자는 숲의 요정에 관한 환상적 애니메이션이고 후자는 잊혀진 음악 거장들의 삶을 추적해나가는 다큐멘터리이다. 전혀 다른 이 두 영화는 그러나, 각각 장르의 특징과 장점을 잘 보여준다.

애니메이션의 특징과 장점은 세트나 배우들의 움직임으로 재현하기 힘든 상상력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만화적 상상력'이라는 게 그런 특징이다. 그런데 그 '만화적 상상력'이란 것이 관객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정교한 플롯과 개성이 뛰어난 캐릭터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건 일반 영화에서도 필요한 조건들이지만 애니메이션에선 특히 이것들이 충족되지 않을 때 '뛰어난 상상'이 '몽상'으로 전락될 위험이 더 크다.

미야자끼 하야오의 영화는 이러한 조건들을 거의 완벽하게 충족시켜 준다. 더불어 '이웃집 토토로'는 이른바 걸작이라 불릴 수 있는 애니메이션에서 필요한 또 하나의 필요충분조건이 있음을 알려준다. 그것은 '리얼리티'이다.

루카치가 리얼리즘을 정의하기 위해서 말했던 '세부 묘사의 정확성'이 애니메이션에서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가를 '이웃집 토토로'는 정교하게 보여준다. 주인공인 두 어린아이들의 움직임을 보아라. 아이들의 놀이와 행동, 심리를 오랫동안 관찰하고 연구하지 않았다면 그런 움직임을 묘사할 수 없다.

미야자끼 하야오의 장인 정신이다. 내가 이 영화에서 '순수의 힘'에 감응하고 감동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 '리얼리티' 때문이었다. 일반 상품에서도 아무리 외관이 좋다고 하더라도 세부의 작은 결점이 하나라도 드러나면 그 제품은 명품이 될 수 없다.(예전에 우리 집에서 썼던 일본산 철제그릇과 우리나라산 철제그릇의 차이는 겉모양이 아니라 뚜껑 안을 둘러싼 철제부분의 세공 차이였다. 우리나라산 그릇은 종종 손가락을 베이게 하였다.)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다큐멘터리의 특징과 장점은 사람의 삶을 어떠한 인위적인 이미지나 장치로 포장하지 않고도, 있는 그대로 '날것'으로 보여줌으로써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Buena Vista Social Club'은 그 전형이다.

한때 쿠바 음악을 이끌어 갔었지만 한동안 잊혀져 이제는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묻힐 수 있었던 거장들, 이브라힘, 오마라, 푼달리타, 꼼빠이, 피오, 바바리또 들이 우연한 계기로 다시 뭉쳐서 음반을 만들고 그 음반이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과정을 이 다큐멘터리는 따라간다.

다양한 사람들만큼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삶에 대한 자세도 다양하다. 다큐멘터리의 힘이 사람의 또는 사물의 모습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지라도 아무 것이나 영상으로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상으로 담을 가치가 있어야 된다. 그 가치에 대한 판단이 감독의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인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보여줘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빔 벤더스 감독의 판단은 정확했다. 영화는 잊혀진 노장들이 모여서 처음 음반을 만드는 과정과 그들이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얘기하는 인터뷰와 음반의 성공에 의해서 이루어진 순회공연 실황이 편집되어 있다.

어찌 보면 지루할 수도 있는 이 영화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노인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에 감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음악이다. 그들은 음악을 통해서 열정을 전달한다.

그리고 그 열정은 열악한 가정과 사회의 환경에서도 절망에 매몰되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의 낙천적인 삶의 자세에서 나온다. 가난하고 힘겨우면서 잃지 않는 '낭만', 내가 정말 놀라면서 감동을 느낀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그래서 이브라힘과 오마라는 "내 슬픔을 꽃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꽃들이 내 슬픔을 알면 죽어버릴 테니까."라든지 치자꽃 두 송이를 그녀에게 줬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서. 치자꽃 두 송이는 그녀와 나의 마음"이라고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잘 삭은 젓갈처럼 감칠맛 나는 그들의 '낭만'이 아름답다. 또한 슬프다. 두 영화를 보고 한동안 내 머리 속에서는, 토토로 곁에서 천진난만하게 뛰어 놀던 두 아이와 젖은 눈빛으로 마주보며 노래를 부르던 두 노인이 맴돌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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