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시> 눈 내리는 날이면
<독자시> 눈 내리는 날이면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5.12.16 00:00
  • 호수 2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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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면 그랬었지

화롯불이 피어나고 군불 따뜻한 할머니 방

연탄불이 활활 타올라 짤짤 끄는 어머니의 방

어린 시절의 겨울의 방을

눈이 내리면 그리운 가슴을 내어 놓듯 생각했었지

천사의 미소를 보는 것 같은 눈이 내린 아침

가파른 언덕을 오르다

침묵 같이 말을 잃은 연탄재를 밟으면

사람이 사람을 지켜내려는

보이지 않는 손들을 볼 수 있지

연탄재처럼 뜨거웠던

자신의 가슴을 내어주고

또다시 인간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그런 것들이 어떤 것일까 생각한 일이 있었지

그럴 때면 소가 생각났으며

그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던 짧은 시간들

눈이 오면 연탄재와 소가 떠올라

길모퉁이를 돌아 바라 본 길이

더 멀어지고 길어 마음을 가다듬을 수 없어

회색빛 하늘이려니 하며 바라봤던 하늘에

파란하늘이 펼쳐져 있으면

내 나이 마흔 아홉

아직도 하늘을 다 품은 듯한 가슴

주체 할 수 없어 눈물이 솟곤 하지

곱디고운 눈이 오시는 날이면

그런 가슴으로 살 순 없는 것인가 묻고 싶으며

눈이 내리는 날에는

그래 그럴 수 있다는 반듯하고 하얀 대답을

자신에게 들을 수 있으면 하지

이제 눈이 내리는 날에는

할머니의 방 어머니의 방은 아늑하지만

긴 그리움 속으로 더 멀리 넣어두고

좁게만 느껴지는 내 가는 길이 간혹 보여도

연탄재를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남아있는 길을 갈 수

있으리라

 

 

홍성희/서천주부독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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