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쌀독은 늘 비어있었다.
하느님께 빌었다.
“살려주시려면 새 동아줄을 내려주시고 죽여 주시려면 헌 동아줄을 내려 주세요.”
서른 살 전후 주경야독 시절이 있었다. 식구들 먹여 살리랴, 공부하랴 한 때 난 목숨을 걸고 살았다. 하루를 위해 하루를 살았다. 생각해보면 꿈결 같다.
어느새 나이를 먹었다. 그동안 40여년을 학자로 살아왔다. 하고 싶은 하나가 가슴 한 켠에 늘 외롭게 있었다. 그림 그리기였다. 나는 초등학교 대표로 그림 대회에 나 간 적이 있었다. 60여년이 지났어도 잊혀지지 않았다. 그 때 어린 나는 은연 화가가 되고 싶었다.
외로워서 간 길은
그리워서 돌아온다
뿌연 신작로길
머언 플라타너스길
누굴까
늦마중 나온
등불 들고 서 있는 이
-신웅순의 「늦사랑2」
늦마중 나온 등불 들고 서 있는 이, 초등학교 때의 어린 나이다. 이제 와 어린 내가 그림을 그린다고 지금의 내게 청한다.
7. 8년을 꾸물대다 이제야 시작했다.
“될 수 있을까.”
“그래 만년에 한바탕 신나게 놀아보자.”
학문은 일단의 마무리를 해야 한다. 벽돌 한 장도 올려놓지 못했는데…… 능력이 여기까지인 것을 어찌하랴. 이후는 후학들의 몫이다. 마음을 내려놓으니 편하다.
오늘이 한국화 공부하러 가는 2주째이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붓이야 서예로 반세기를 보냈으나 본격적인 그림은 왕초보이다.
소나무 숲에 길이 나 있고 여승 둘이 산길을 오른다. 여승이 있으니 절이야 그릴 필요가 없잖은가. 그리 주제를 잡았다. 그림이란 무엇인가? 결국 깨달음을 향해 가는 스님의 뒷모습 같은 것이 아니겠냐. 앞에 가고 싶지는 않다. 멀리서 뒤를 따라가면 된다.
목표는 둘 것이나 욕심은 일도 없다. 별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게 대수가 아니다. 내겐 살아온 향기가, 살아갈 철학이 있으면 된다.
서툰 첫그림을 보며 화가인 집사람과 얘기를 나누었다.
“오, 잘 그리네요. 좋아요.”
늘그막 아내한테 받은 칭찬도 초등학교 때 선생님한테 받은 칭찬 못지않다.
예까지 따라온 외로움이다.
“그림아, 고맙다.”
<2024. 3.11. 석야 신웅순의 서재, 여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