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논평 하는 사람의 고역
정치논평 하는 사람의 고역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6.12.29 00:00
  • 호수 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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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환 여의도통신 대표기자>
내가 KBS1 라디오의 한 시사프로에 매일 오전 출연해 이른바 ‘정치논평’이라는 것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됐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할 만한 시간도 됐건만 정치논평은 나에게 여전히 낯설고 어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왕 시작한 일이니만큼 자의든 타의든 방송을 끝낼 때까지는 내 나름의 전략을 세워서 정치논평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무엇보다 먼저 무난하고 원만한(?) 논평은 지양하려고 신경을 썼다. 일부 청취자의 마음이 불편해지는 일이 있더라도 나만의 차별적인 ‘색깔’과 ‘예각’을 드러내고자 했다.

물론 그것이 사실관계에 기반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이 돼서는 곤란할 것이다.

의욕의 과잉도 당연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그러한 차별성 시도가 정치논평의 세계를 좀더 다양하고 풍요하게 만들 수 있는, 나만의 기여 방식이라는 믿음만은 분명히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이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언론비판에 나섰을 때는 발언 내용에 대한 시시비비는 가려주되, 다음과 같은 쓴 소리를 던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청와대에 있는 분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이제 언론비판은 언론운동가들의 몫으로 남겨줬으면 한다. 여러분은 정치와 행정을 제대로 챙기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으면 한다. 언론운동가들의 밥줄을 끊지 마라.”

다음으로 기자라는 신분을 십분 활용해 현장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다수의 정치논평은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된 것을 ‘1차 자료’로 삼아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보도 기사는 현장의 진실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때로는 의도적이든 미필적 고의든 사실이 왜곡되기도 한다. 1차 자료가 잘못된 경우에는 그것을 가공한 정치논평도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된 것을 참조하되, 그 보도에 등장한 의원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를 걸어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다(그것이 어려울 경우엔 보좌진이라도 만났다). 인용된 자료가 있으면, 시간이 허락하는 한 원문을 직접 찾아서 읽어봤다.

언론 보도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정치권의 미묘한 움직임이 현장에서 뛰고 있는 여의도통신 기자들에게 포착되기도 했는데, 그것은 차별성 있는 정치논평의 생생한 원재료가 됐다.

마지막으로 특정 현안이나 사건의 추이에 대해 나름의 예측을 해보려고 노력했다. 예컨대 한나라당 지도부가 앞 다퉈 사학법과 예산안을 연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때에도 “상황을 끝까지 지켜봐야겠지만”이라는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결국 연계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12월 22일 오전 방송을 하면서 그날 오후로 예정된 예산안 처리가 연기될 것이라고 예측한 것도 그대로 들어맞은 사례 중 하나이다.  

그런데 몇 번의 예측이 들어맞긴 했지만 솔직히 나의 심정은 착잡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의 예측과 전망이라는 것도 그리 대단한 일이 못된다. 여당과 야당이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할 것인지 판단하기 전에 대선전략을 상수(常數)로 설정만 하면 정답은 금방 나오기 때문이다.

상식과 원칙이, 민생과 경제가, 국익과 비전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대선전략의 종속변수(從屬變數)로 전락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정치논평을 하는 사람의 고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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