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는 사춘기 (31회)
내 친구는 사춘기 (31회)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6.12.29 00:00
  • 호수 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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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뒤따라오는 동생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길 가장자리에 소리 없이 앉았다. 백로는 그런 우릴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여전히 앞을 향해 걷고 있었다.

가끔 논과 논 사이를 가로질러 가는 새를 보긴 했지만 저렇게 길 따라 죽 걷는 새는 보지 못했었기 때문에 우리 눈은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새도 걸을 수 있다는 걸 새로 발견한 과학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형, 저거 새가 아닌가봐.”
형규가 뒤에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럼 새가 아니고 뭐냐? 인간이냐?”

퉁명스런 형오의 말에 형규는 다시
“응, 인간이 마법에 걸려 낮에는 새가 되고 밤에는 인간이 되는 거야. 그래서 저 새는 일부러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거라구. 신호를 보내는 거지. 마법을 풀어달라고 말이야. 그런데 아무래도 여자겠지? 난 여자애들은 좀 무서운데……. 그냥 새로 있으라고 놔두자.”
하고 말해서 우릴 웃게 만들었다. 물론 작은 소리로 웃었다. 그때까지도 백로는 여기 저기 고개를 돌려가며 조용히 걷고 있었다.

“형아, 우리도 죽으면 새가 될까?”
이번엔 지수의 목소리다.
“뜬금없이 무슨 말이야?”
“할머니가 저번에 그러셨잖아. 죽으면 다른 것으로 다시 태어난다구. 그래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구. 난 아무래도 저 새가 할아버지 같아.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우리 얼굴을 보러 온 게 아닐까? 안 그렇다면 왜 우리 쪽으로 걸어오겠어.”

“야, 얘네들 오늘 왜 이러냐? 너무 옛날이야기 많이 본 거 아니냐?”
내 말에 형오도 피식 웃으며 “그러게.”하고 대답했다.
이제 새는 우리 앞에 휘어진 채 서 있는 소나무 앞까지 왔다.
두리번두리번 거리는 폼이 정말 뭔가를 이야기 하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형오가 앞에 있는 돌을 주워들고 새를 겨냥했다.
“잘 봐. 내가 잡을 게.” 소곤거리는 형오 목소리가 잔뜩 긴장해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형오는 새 다리를 보고 있었다.

소리 없이 일어선 형오가 팔을 뒤로 젖혔다. 바람 소리가 나며 돌이 새를 향해 날아가는 순간, “할아버지!” 하며 지수가 새를 향해 튀어나갔다.
“헉!” 다리에 돌을 맞은 지수는 그대로 주저앉고 새는 날아갔다.
그날 이후로 백로는 지수의 할아버지가 되었다. 나중에 어른들도 그 이야기를 듣고는 껄껄대며 웃으셨다.

아무튼 새를 그렇게 날려 보내고 형오 자전거 뒷자리는 지수 차지가 되어버렸다.
둘이는 씽씽 앞을 향해 나가고, 뒤에 남은 형규와 나는 긴 대나무 막대기를 주워들고는 따듯한 바람에 잔뜩 녹아있는 땅을 쑤시면서 걸었다.
그런데 이쪽저쪽 쳐다보며 걷던 내 눈에 이상한 곳이 보였다.
포크레인으로 깎다 만 조그만 언덕이 마치 우산처럼 보였던 것이다.

“어? 저게 뭐냐? 웃기다. 우산 같지 않냐?”
내 말에 형규도 “응, 형아 가보자.”하고 대꾸했다.
그렇게 형규랑 같이 가 본 언덕 아래가 바로 우리의 본부가 되었다.
나중에 우릴 발견하고 달려온 형오랑 지수도 ‘대단한 발견’이라며 우릴 치켜세웠다.
공사를 하다 만 곳답게 여기저기 건축용 나무들이 쓰러져 있었고 제법 넓은 나무판자도 있었다.
그날 우린 점심 먹는 것도 잊은 채 해가 질 때까지 그곳에서 놀았다.           
(계속)

<글/이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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