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 곳곳에 넘쳐나는 산업단지용 땅
서해안 곳곳에 넘쳐나는 산업단지용 땅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6.12.29 00:00
  • 호수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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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산단 불필요한 사업, 자연과의 공생 모색해야

▲ 군장산업단지 군산지구. 갯벌매립이 완료되었으나 분양률은 25%에 못미치고 있다. ▲ 시화간척지와 화옹간척지








장항국가산업단지 문제로 시끄러운 한 해였다. 군수가 상경하여 단식투쟁을 하였고 군민 일부는 트랙터를 몰고 시위에 나서기도 하였다. 374만 평의 장항갯벌을 매립하여 평지를 만들고 그 위에 공장을 지어야 서천군이 잘 사는 동네가 된다는 것이다. 그 공장에서 수천 내지 수만의 인력을 고용하면 인구는 늘고 그 공장에서 생산되는 물품은 장항항을 통해 수출함으로써 항구는 번창할 것이다.

 

개발성장신화 지금도 가능한가

아주 명쾌하고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는 개발논리이다. 일단 공사가 확정되면 해가 갈수록 농사일이 힘에 부치는데 자신이 소유한 논밭이 몇 배에서 몇 십 배까지 뛰어오를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으리라. 조그만 가게라도 가진 이들은 더 많은 매출과 소득을 안겨주리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접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장항국가산업단지 조성은 국책사업 아닌가. “국책사업!” 하면 정부에서 심사숙고해 추진하는 사업일 터이므로 왠지 믿음이 간다.

이미 17년 전부터 나라에서 계획을 잡아놓았는데 고작 조개나 몇 개 파다 먹는 갯벌을 위해 이를 포기하라는 환경론자들이 참으로 철없는 사람으로 비쳐지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이러한 대대적인 개발에 의한 성장신화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지난 40년 동안 고도 경제성장을 이룬 경험을 밑바탕으로 하여 이러한 개발·성장주의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규모 단지를 개발하여 지역민들을 돈 방석 위에 올려놓은 수많은 사례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개발·성장 신화가 지금도 가능한 것인가. 한국이 아직도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수반하는 개발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수준인가. 장항산단을 둘러싼 공방을 통해 포크레인을 앞세워 산을 헐고 바다를 메워 공장을 지어 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검토해보아야 할 것이다.


실효성·타당성 결여한 장항산단

1조 5천억원을 들여 갯벌을 메우면 어떤 공단이 들어설 것인가. 서천군과 장항국가산업단지조기착공추진위원회는 장항산단이 완공되면 인구가 17만으로 늘고 6만의 고용창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어떤 업종의 공단들이 들어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장항산단 문제는 타당성이나 실효성 검토는 뒷전으로 물러간 채 정치적 이슈로 변하였다.

울산이나 창원과 같은 기계산업 단지를 입주하도록 하여 자동차나 선박, 기계장치 등을 만들어 내는 공장들을 유치할 것인가. 기계산업 위주의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서 장항산단이 직면하게 될 어려움은 헤아릴 수 없지만 그 중 몇 가지를 들어보자.

먼저 숙련된 남성노동자들의 부재이다. 10여년 이상을 기계밥을 먹고 살아온 남성 노동자들의 존재는 기계산업의 성패를 가름하는 척도이다. 이러한 숙련노동자들을 서천지역이 중심에 서서 모으는 것이 가능할까.

둘째는 관련 산업의 부재이다. 자동차를 만들고, 선박을 짓기 위해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단지 자동차 공장이나 거대한 도크만이 아니다. 수많은 부품과 부품의 각 공정을 담당할 연관 산업의 부재는 장항이 이 산업에서 울산과 창원, 인천과 같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게 할 것이다.

셋째는 기계산업에는 대대적인 투자가 더 이상 쉽지 않다. 기계산업에서 투자가 가능한 부분은 자동차와 선박, 철강 정도일 것이다. 이들 산업에서 향후 몇 십년간 한 공단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투자가 불가능함은 상식이다.


   
▲ 장항갯벌 매립 반대하는 서천군 어민들. 충남 김생산량의 94%가 서천에서 생산된다.
인구 되레 줄어드는 군산

또 하나의 가능한 산업분야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첨단 전자산업 분야이다. 특히 반도체 분야가 대대적인 공단 조성이 가능하다. 하지만 수도권에 비해 숙련 노동자를 흡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물론 특별한 혜택을 주어 대기업으로 하여금 장항산단에 투자하도록 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해당 기업의 위험도를 엄청나게 증가시키는 일이다.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는 기업들이 이러한 결정을 선뜻 내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가능한 분야는 저임금의 비숙련 노동자들이 필요한 기타 분야이다. 하지만 이 분야에는 중국이 버티고 있다. 제정신을 가진 자본가라면 탁상시계를 만드는 공장은 당연히 중국에 짓는다. 중국에는 우리의 10분에 1정도의 임금으로 일할 수 있는 노동자가 우리보다 20배쯤은 많이 있다.

비슷한 논리로 진행된 군산의 ‘군장국가산업단지’를 보면 장항산업단지의 꿈이 허구임이 드러난다.

군산을 보면 당시 사업추진 주체들은 군산국가공단이 완공되면 군산시 인구가 70만 명이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며 갯벌을 매립하였으나 현재 군산의 인구는 25만 정도로 오히려 더 줄었으며 공사가 완료된 현재 군장산업단지 408만평의 분양도 24.8%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복합산업단지를 만든다며 새만금간척사업을 벌이고 있다. 국토개발연구원은 새만금간척지의 5%인 280만평을 산업용지로 사용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당진 석문산업단지도 방치

땅이 없어서 공장을 짓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충남 당진군 석문면에도 1991년에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된 석문산업단지 365만평이 있다. 장항산업단지와 비슷한 규모이다.

현재  방조제만 막은 상태에서 안쪽 호수는 썩어가고 있다. 이완구 충남도지사는 장항산단 포기를 두고 ‘충남푸대접론’을 말하기 전에 석문산업단지 문제부터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서해안 도처에 80년대 이후 갯벌을 막은 땅들이 넘쳐나고 있다. 경기도 안산시 오이도와 대부도를 잇는 12km의 시화만을 막아 새로 생기는 5천 200만평의 땅에 공업단지, 도시개발, 농지조성 등 시화산업단지를 조성해 수도권의 1,600여 개의 공장을 유치하고, 시화호의 담수로 인근 농지에 물을 공급하여 도시근교에 첨단복합 영농단지를 만들겠다던 시화지구 간척사업이 1조원이 넘는 국민 혈세만 허비한 채 실패로 끝났다.

여의도 면적 21배의 갯벌을 사라지게 한 경기도 화성시 남양만을 가로막은 화옹지구 간척사업도 당초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간척지는 황량한 벌판으로 남아있다.


끝없이 공사판 벌이는 토건국가

이처럼 개발의 삽날에 의해 갯벌이 대규모로 사라지며 1990년 이후 16년 간 서해연안 어획고는 52만t에서 27.6만t으로 47% 감소하였다. 특히 경기인천 지역의 어획고는 70% 급감해 최근에는 연간 3만t에 머무르고 있다.
 대신 최근 5년 동안 수산물 수입량은 69.3% 늘어나 2005년 수입량은 127만t에 달하고 있다.
17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수많은 발명품을 낳으며 숲을 대규모로 파괴하였다. 벌목업자와 광산업자, 석유채굴업자는 떼돈을 벌며 자본을 축적하였으나 숱한 동식물이 멸종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국민들에게는 ‘자연보호’라는 개념조차 부재한 상태에서 단기간의 경제 성장 기간에 비례하는 단기간 동안의 대규모 자연파괴가 이루어졌다.
국가 조직과 결탁한 건설자본은 서해안의 리아스식 해안을 자로 댄듯한 직선으로 만들어버렸다.


개발은 더 이상 덕목이 아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끝없이 공사판을 벌여야 경제를 지탱할 수 있는 토건국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토건국가를 지탱하는 구조는 끊임없이 불필요한 토건사업, 심지어는 만들수록 해악만 끼치는 개발사업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새만금과 천성산이 그렇고 산허리를 자르고 들판을 가로질러 도로를 내고, 산자락 허물어 골프장을 만들고, 20년만 넘으면 아파트 단지 허물어 새로 짓는 재개발사업이 그렇다.
장항산단 문제도 이의 연장선상에 놓고 파악할 수 있다.

석유 등 화석연료의 고갈을 앞두고 있는 현재 이 같은 개발은 더 이상 추구해야할 덕목이 아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며 생태계의 일원으로서만 생존이 가능하다. 자연 생태계를 잘 살려 그 가운데에서 뭇생명과 함께 공생하려는 자세를 회복한다면 ‘어메니티 서천’은 대안으로 다가올 것이다.

<글·사진 /허정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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