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국책사업, 실패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대형국책사업, 실패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01.19 00:00
  • 호수 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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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공사 벌이고 보자”는 막개발사업 국민혈세만 낭비

장항산단과 같은 국민의 세금으로 추진하는 사업은 결과가 시화호나 화옹호처럼 실패한 사업으로 결론이 나도 처음 정책을 입안한 사람이나 정책집행자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만약 내 돈으로 사업을 벌인다면 만에 하나 실패의 가능성이 보인다면 그렇게 함부로 돈을 쓰자고 하지 못할 것이다.

환경부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건교부 산하 한국토지공사는 장항산단 조기착공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여기에 지방 자치체 관료들과 관변단체 언론까지 가세하고 있다. 수조원이 들어가는 대형국책사업의 결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는 구조를 알아본다.<편집자>



▲ 자연해안선이 살아있는 서천군 바다. 국민의 세금으로 이 바다를 메워 해수면보다 높게 하여 육지로 만드는 일은 건설업계로서는 황금알을 낳는 공사판이다. 실패해도 책임질 사람이 없으니 ‘일단 공사부터 벌이고 보자’는 목소리가 높다. 1970년대 후반 이란에서 일어난 회교혁명의 여파로 중동에 진출한 건설업체들은 서둘러 철수해야 했다. 건설경기가 침체하자 철수한 건설장비의 활용방안으로 1980년 정부는 동아건설과 현대건설에 공유수면 매립 허가를 내주었다. 인천시 서구 경서동과 연희동 일대 총 1천1백만평의 갯벌과 서산 천수만 갯벌이었다. 간척사업으로 망한 동아건설 농지를 늘려 식량자급을 해보겠다는 게 사업목적이었지만 이들이 농사를 지어 타산을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용도변경하여 땅장사를 하려는 게 목적이었다. 1998년 2월 25일, 5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룩했다는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는 날이었다. 여의도에서 성대한 취임식이 있었다. 세계 도처에서 취임을 축하하러 온 사절들로 호텔들은 ‘취임특수’를 맞아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도 했는데 취임 축하차 서울에 온 인사들 가운데에는 미국의 대중가수 마이클 잭슨도 들어있었다. 이 때 인천매립지를 관광, 물류단지로 만들어 땅장사를 하기 위해 용도변경에 절치부심하던 동아건설은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세계적 재벌을 능가하는 어마어마한 부자라고 이미 소문이 난 마이클 잭슨을 끌어들인 것이다. ‘외환위기 극복에 노심초사하는 새 정부는 외국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려 할 것이고 거부인 마이클 잭슨이 인천매립지에 투자를 하겠다면 용도변경을 해주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이 동아건설의 계산이었다. 집요한 용도변경 요구 동아건설이 매립한 인천매립지 가운데 6백만평은 쓰레기매립장으로 용도 변경됐고 나머지 5백만평 중 3백80만평이 동아건설 소유로 돼 있었는데 용도변경을 해달라는 동아건설과 애초 매립목적인 농지로만 써야 한다는 농림부의 주장이 맞서 8년동안 끌어오다가 농지로 사용하기로 결론이 난 상태였다. 마이클 잭슨은 취임식 전날 최원석 동아건설 회장 집에서 만찬을 가졌으며 취임식 직후에는 인천매립지를 직접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언론은 이 같은 사실을 상세히 보도하면서 “마이클 잭슨이 투자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으며, 최회장과 마이클 잭슨이 투자 범위, 시기, 방법 등 구체적 사안에 대해 협의를 계속해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으로 지면을 채웠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동아건설의 주식값이 뛰어오른 것이다.그러나 농림부의 입장은 단호했다. 간척농지의 용도변경 땐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농림부장관이 승인하도록 되어있는데 동아건설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같은 시기에 간척사업을 벌인 현대건설의 서산간척지도 용도변경을 요구해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김성훈 농림부 장관은 용도변경을 허락하는 것은 ‘국기를 흔드는 문제’라며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갯벌매립 개발논리 이젠 안통해

결국 동아건설이 띄운 마지막 승부수는 수포로 돌아갔고 1999년 5월 농업기반공사는 부도 위기에 몰린 동아건설로부터 문제의 땅 370만평을 6,355억원을 주고 사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건설은 2000년 11월 최종 부도처리되고 말았다.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면적, 많은 인구’라는 말이 대명사처럼 되어 있다. 이는 한편으로 국토면적확대라는 개발논리에 날개를 달아주어 갯벌에 대한 압력(간척 및 매립)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미 인천매립지와 동아건설의 예를 보면 이같은 논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이후 민간기업이 공유수면 매립허가를 얻어 자신의 자금을 들여 간척사업을 벌이는 일은 없었다. 경제성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화지구에서의 실패에 이어 화옹지구와 새만금에서 간척사업이 강행된 것은 이 사업의 시행청이 수자원공사나 농업기반공사 등 공기업이며 실패해도 책임질 일이 없기 때문이다.

시화호를 건설하는데 1조 원이 들었다. 그러나 결국 원래 목적인 담수호를 조성하는 데 실패하고 해수 유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실패한 정책에 대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국민의 혈세는 눈 먼 돈이 된다. 이후 화옹지구에서 같은 실패를 되풀이 했으며 새만금에서 재삼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한국의 서해안에는 배수갑문을 통해 바닷물이 들락거리는 괴상한 호수가 3개나 생기게 되었다.

국민혈세 지키는 납세자소송법 필요

장항산단의 추진세력은 일자리 창출과 인구 증가를 내세운다. 그러나 이 또한 무책임한 발언이며 책임을 질 수 없는 주장이다. 토지공사의 환경영향평가에서는 조성된 산업단지가 100% 분양과 입주를 전제로 경제성을 평가하였다. 인군 군산산업단지의 예만 보더라도 전혀 근거없는 주장이다. 오히려 3,000여 어민들만 평생직장을 잃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다.

2004년 여권 일각에서는 납세자인 일반 시민들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무분별한 예산낭비 에 대해 직접 소송을 제기해 불법으로 유출된 예산을 환수할 수 있는 방안이 추진돼 주목을 끈 바 있었다. 선진국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납세자 소송법을 발의한 것이다. 국민의 혈세가 눈먼 돈이 아니라면 그 정책에서 실패했을 경우 그것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을 모두 책임지게 만들어 놓는 장치가 필요하다. 장항갯벌 매립 문제를 두고 이러한 장치가 더욱 절실하다.

<글/사진 허정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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