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의 문화재 탐방<12>
우리고장의 문화재 탐방<12>
  • 이강선 기자
  • 승인 2007.02.16 00:00
  • 호수 3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획취재를 마감하며

2006년 3월부터 12회에 걸쳐 우리 고장에 산재되어 있는 국가지정·충청남도지정문화재에 대해서 소개하면서 여러 가지 느낌이 교차됐다. 어려서부터 자주 다니며 놀던 단순한 마을 뒷산 서천읍성에서, 현재는 우리에게 더없는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고 그것이 읍성 주변의 주민들에게는 재산권을 행사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애물단지이기도 하다.

우리 고장에는 세 곳에 향교가 있다. 대부분의 향교가 위치한 장소는 주변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앞쪽이 훤히 트여있기 때문에 그 향교의 전경을 사진으로 담는 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향교의 전경사진을 찍기 위해서 고가사다리 차량을 이용하여 아찔한 순간을 경험하면서 바닥에서 보는 향교의 모습과 다른 향교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 임대한 대형 고가 사다리차에 몸을 의지해 고공촬영을 하여 바닥에서 볼수 없는 전경을 만들어 냈다. ▲ 건강하게 잘 보존되어 있는 비인읍성의 동쪽 벽 일부
▲ 비인읍성 서쪽 벽이 G빌라에 의해 훼손되어 있다. 감격과 슬픔이 교차된 비인읍성 비인을 어려서부터 자주 다녔지만 그 때는 비인읍성을 취재하면서 느꼈던 새로운 마음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비인읍성을 한 바퀴 돌면서 감탄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읍성의 보존상태가 아주 훌륭하여 옛날로 돌아온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반대로 비인읍성을 탐사하면서 슬픔이 어깨를 짓누르기도 하였다. 비인읍성 서쪽 벽을 훼손하고서 건축된 G빌라와 농지, 접근성을 좋게 하기 위하여 남쪽 성둑을 무너뜨려 길을 만들고, 인적이 뜸한 곳이라고 쓰레기를 버리고 소각까지 일삼고 있는 곳이 바로 성둑 위라는 사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건지산성과 서천남산성, 서천장암진성을 올라보면 과연 이곳에 성이 자리하고 있는 이유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건지산성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는 서해바다, 남쪽으로는 금강, 북쪽으로는 천방산, 동쪽으로는 논산 쪽을 훤히 바라다 볼 수 있어 백제부흥운동의 본거지라 할 수 있을 만큼 지리적 요충지라고 여겨질 만하다. ▲ 비인읍성의 남쪽 성둑에 버려지고 태워진 쓰레기가 지난해 봄 이전부터 현재까지 방치되어 있다.
▲ 서천남산성 정상의 발굴현장과 그것을 짓누르는 KBS 중계 철탑이 서천의 소중한 문화재를 훼손하고 있다. ▲ 서천향교 바로 위에 설치한 S이동통신 기지국 철탑이 향교의 경관과 왼쪽위에 위치한 서천읍성의 경관을 훼손하고 있다.
문화재 위에 군림하는 공영방송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서천남산성 정상에 오래 전부터 철탑이 자리 잡고 있어 산성이 훼손되고 있음이다. 이 철탑은 KBS가 설치한 방송중계 시설로써 난시청지역을 해소하는 용도라고 한다.

설치 당시에는 문화재에 대한 관심도가 지금과 달랐기 때문에 그 곳이 문화재인 산성의 정상인줄 알면서도 허용되었다면 지금은 문화재 인식도가 예전과 달리 상당히 높아 흉물스런 철탑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여 서천남산성을 훌륭하게 보전하자는 목소리가 전해진다.
이와 함께 서천읍성과 서천향교 주변의 이동통신사 철탑도 이전해야 마땅하다고 판단된다.
이번 문화재탐방 기획에서 지난해 10월의 주제가 가정 이곡과 목은 이색, 문헌서원 등이었다. 전 달인 9월에 목은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에 도둑이 들어 벽체가 뚫리는 사건이 벌어져 당혹감을 면치 못하였는데 다행이도 당시 도둑이 훔치려했던 영정각의 영정은 모조품이어서 한시름을 덜었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다.

▲ 공작선 명인인 서천부채장의 공방 문화재를 향한 한결 같은 삶 지석리삼층석탑은 마을 뒷산의 절터에서 외지인이 가져가는 것을 마을 주민들이 목격하고 그 외지인을 가로막아 반출되는 석탑을 되찾았으나 그 석탑을 제자리에 돌려놓지 않고 현재의 자리에 보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현재의 위치에 석탑이 있어서 여러 가지 불편한 것이 많으니 그 석탑을 제자리에 돌려놓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서천부채장의 전수교육보조자인 이광구선생의 공작선 공방을 방문하였을 때 그 인상은 차마 이곳이 우리나라 공작선 명품을 생산하는 곳이라고 느껴지기 어려울 정도의 열악한 작업환경이었다. 그 이유는 공을 들인 것에 비해 생업으로써의 경제적 생산효과가 적으며 그 전통을 이어오는 것에 대하여 사회의 책임이 부재함을 알게 되었다. 서천이하복가옥을 방문해서는 관리자인 청암재단의 이기원선생이 보여주는 고서와 옛사람들의 살림살이, 생활용품 등을 감상하고 대청마루에서 옛이야기를 즐겼던 기억도 생생하다.언급한 이들 문화재뿐만 아니라 탐방한 모든 문화재는 기자에게 한 해 동안 기쁨과 슬픔을 안겨 주었다. 바라볼수록 기쁘기도 하고 가까이 있으면 있을수록 슬프기도 한 현재의 우리 문화재가 주민 모두에게 정말 필요한 것으로 간주되었으면 하는 소망뿐이다. ▲ 서천읍성 동문터
문화재는 당대 문화의 집합체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한다. 배우고 경험한다고 하는 것에는 과거라는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을 많이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공자의 말 중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구절이 있다.

‘옛 것을 앎으로써 새로운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풀이되는 뜻으로 배움에 있어 새로운 것만이 아닌 옛 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구절이다. 옛 것을 아는데 있어 문화재만큼 가까이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문화재는 오랜 시간을 머금고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문화재를 안다는 것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세월과 경험을 익히고 거기에 현재의 문화를 접목한다면 그것이 바로 공자가 말하는 스승이 될 수 있는 길이라고 할 것이다. 

문화란 인간의 이상을 실현해 가는 정신활동과 생활양식을 총칭하는 말이다. 즉 문화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사회 속의 관습, 가치, 규범, 제도 및 전통 등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생활양식을 포함한다.

이러한 총체적인 생활양식과 정신이 깃들여있는 것이 문화재인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