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합주
아름다운 합주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7.07.27 00:00
  • 호수 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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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의 길-
   

▲ 권기복/칼럼위원

“엄마, 이거 안 돼!”
막내인 윤이 녀석이 삑삑거리던 리코더를 방바닥에 내팽개치며 신경질을 부렸다. 내가 험한 얼굴 표정으로 혼내려고 하자, 아내가 잽싸게 리코더를 주워 들고 사이에 끼어들었다.

“얘, 윤아!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니? 훌륭한 피아니스트도 처음에는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면서 익히게 되는 거야. 처음부터 아름다운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내팽개치면, 그 사람은 영영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가 없게 되는 거란다.”

아내는 리코더를 입가에 가져가면서 도레미파솔라시도 각 음계의 소리를 정확하면서도 천천히 뱉어 냈다. 한참동안 엄마와 함께 연습을 한 막내 녀석도 정확한 소리를 내게 되었다.
그 후로 ‘할아버지 시계’를 비롯하여 서너 가지 노래를 열심히 연주했다.

지난 어버이날 오후에 막내 녀석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어버이날 기념 합주공연’을 개최하였다.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뉘어 40여 분간 진행되었다.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제각각 악기를 연주하여 울려 퍼지는 하모니에 대한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막내 녀석의 손에는 항상 리코더가 쥐어져 있었다.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외국나들이를 보냈는데, 공항을 빠져나가는 그의 손에도 리코더가 쥐어져 있었다.

그렇다. 민주주의는 본시 시끄러운 정치제도이다. 우리 속담에도 ‘우는 아이에게 젖 한 번 더 물린다’는 말이 있다. 가만히 있는 아이는 모든 것에 만족하는 것으로 여기는 법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이 항상 무엇이가를 요구하거나 주장하는 목소리로 가득 차게 되어있다. 만일 조용한 정치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저주해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합주를 하려면 저 혼자만의 삑삑거리는 소리를 다스릴 줄 알아야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박자와 음정도 맞출 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의 전제는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작금의 한국 민주주의는 시끄럽다. 삑삑거리는 소리도 많고, 제멋대로이기 일쑤이다. 이런 현실을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는 다른 이익집단의 집회활동에 대해 심한 욕설을 퍼붓기도 하고, 지방자치제도가 쓸데없는 것이란 말도 서슴지 않는다. 예전 독재정권 하에서처럼 시민들이 찍 소리도 내지 못하는 상황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민주주의가 삑삑거린다고 버릴 수는 없다. 음정과 박자가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듯이, 다른 사람에 대해 배려하는 마음과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가장 아름다운 민주주의의 꽃을 활짝 피우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조화로운 하모니가 절실하다. 그러나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내일을 기약하면서, 오늘 당장은 삑삑거리는 소리도 아름답게 들어주는 아량을 베풀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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