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과 아이들2(제비꽃)
들꽃과 아이들2(제비꽃)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8.06.16 00:00
  • 호수 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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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영
칼럼위원

‘그래,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나 보이는 거야. 자줏빛이지.’

이 시는 ‘안도현의 제비꽃에 대하여’ 란 시의 일부다. 제비꽃은 이 시에서처럼 허리를 낮추고 봐야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키가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풀꽃이다. 아름다운‘이오’의 눈을 생각하며 ‘주피터’가 만들었다는 신화도 있지만‘나를 생각해주세요.’라는 꽃말처럼 애잔한 꽃이다. 우리나라 여교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 제비꽃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시선을 낮추어 아이들을 봐 버릇해서 누구보다도 먼저 제비꽃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을 알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B와 C는 우리 반 아이들이다. 녀석들은 여덟 살이고, 우리 반에서 가장 키가 작다. B는 유난히 피부가 뽀얗고 턱이 갸름한 남자 아이다. 또  웃으면 눈이 다 감기는 선하고 예쁜 눈을 가진 녀석이다. 수줍은 성격에 말도 크게 하지 않는 녀석인데, 화가 나면 제비꽃 씨앗주머니가 터지듯 폭발해버린다. 한번은 화가 나서 식식거리는 녀석을 혼낼 수도 없어서 꼭 안아주었다. 버둥거리던 녀석은 곧 잠잠해지더니 내려가지 않으려 했다. 엄마 품이 이렇게 필요한 녀석인데……. 얼마나 힘들면 그렇게 폭발할까.

C는 여자 아이인데 피부는 까무잡잡하고 눈이 흑요석처럼 반짝인다. 친구의 평범한 한마디에 눈동자가 먼저 촉촉이 젖어드는 녀석은 마치 아침 이슬을 머금은 자줏빛 제비꽃을 닮았다. 녀석은 원래 서울에서 살았다는데, 엄마가 외가에 살라고 두고 갔다고 한다. 언제인가 학교에서 상으로 받은 문화 상품권 한 장을 고이 간직하며 엄마 오면 드리겠다고 한다. 코끝이 찡해졌다. 엄마는 추석에나 온다는데…….

“우리 아빠 내일 결혼 한다.”

B의 말에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우리 엄마는 작년 5월에 결혼 했다.”

C도 지지 않으려는 듯 한마디 거든다. 몇몇이 잠깐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냥 지나쳐버린다. 다행이다.

B는 가출한 어머니를 기다리고, C는 재혼한 어머니를 기다린다. 녀석들은 얼른 여름방학이 되어 엄마를 만나는 것이 꿈이다. 나를 생각(사랑)해달라는 제비꽃의 꽃말처럼 녀석들의 눈은 늘 그리움을 담고 있다.

제비꽃의 색깔은 흰색과 보라색이 주종을 이루지만 두 색이 다양하게 섞여 여러 채도의 보랏빛 꽃을 피운다. 그런데 노란색 제비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이다. 노란 제비꽃은 고산에서 자생하는 꽃이다. 

몇 년 전 혼자 산에 오르다가 정상 부근에서 노란 제비꽃을 처음 발견하였다. 노란 제비꽃도 있다니…….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한참이나 허리를 낮추어 제비꽃을 바라보았으며……, 내려올 때는 빈손으로 내려오지 못했다. 그리고 녀석은 그해 가을까지 내 집 마당에서 잘 버텨주었다.

이듬해 봄, 녀석이 있던 자리에는 아무 기척도 없고, 그 옆자리에 새로 싹이 나고 꽃을 피운 제비꽃이 있었는데, 보라색이었다. 노란색이 보라색으로 변할 이는 만무이니 노란 녀석은 적응하지 못해 죽은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보라색 제비꽃은 이런저런 야생화들과 같이 묻어온 모양이다. 해발 1000m가 넘는 고산에서만 산다는 노란 제비꽃이란 놈은 얼마나 집을 그리워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제비꽃을 닮은 두 녀석이 바뀐 환경에 잘 적응했으면 좋겠다. 우리 집 마당에서 사라진 노란 제비꽃처럼 되지는 않을 테지만 씩씩하게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봄마다 혹시 노란 제비꽃이 싹을 틔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어 녀석이 있던 자리에서 허리를 낮추고 살핀다.

 * 칼럼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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