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과 아이들 4(빗자루국화)
들꽃과 아이들 4(빗자루국화)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8.11.03 14:16
  • 호수 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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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영 칼럼위원

“선생님 ‘들꽃마을’에 하얗게 핀 꽃 이름이 뭐죠?”

하얀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지 이름을 묻는 사람이 종종 있다. 빗자루국화라는 이름을 가진 그 들꽃은 야산에 무리지어 피는 꽃인데, 사람들이 자기 집 마당 끝에 옮겨 심어 놓았다가 꽃이 시들면 잘라서 빗자루를 만들어 썼던 모양이다.(‘들꽃마을′은 우리학교 교정에 있는 들꽃 학습원이다.)

  빗자루국화는 여름 방학을 며칠 앞둔 날, 우리 반 아이들과 같이 부슬비를 맞으며 꽃밭 가장자리에 10m 가량의 이랑을 만들고 심은 것이다. 그 꽃은 두어 해 전에 몇 포기 얻어다 우리 집 마당에 심어놓은 것인데, 순을 잘라서 꺾꽂이 해 놓았었다. 그리고 뿌리가 내린 뒤 옮겨 심은 것이다. 포기를 늘리느라고 자라는 대로 순을 잘라 꺾꽂이를 해놓았더니, 이름값을 못하는 난장이 빗자루국화가 되고 말았다.
 
  빗자루국화꽃은 흔히 볼 수 있는 개망초꽃과 많이 닮았다. 색도 하얗고 크기도 고만하다. 그렇지만 개망초는 줄기 끝에 예닐곱 송이 꽃이 키대기를 하며 피어있는 반면, 빗자루국화 꽃은 가지 꼭대기에서 밑에까지 꼬리를 물고 다닥다닥 피어 있다. 또 개망초의 잎은 국화의 잎 모양을 하거나 길쭉한 타원형이지만, 빗자루국화의 잎은 가늘고 길다. 또 줄기는 빗자루를 만들어 사용하여도 손색이 없을 만큼 키가 훤칠하고 단단하다. 빗자루국화는 꽃이 핀 모습도 좋지만 이름이 더 좋다. 우리 조상은 들꽃 하나에도 멋진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외래종이라니 조금 서운하다.
 
  내년에는 순을 잘라내어 포기를 늘리는데 욕심내지 않고 자라는 대로 그냥 두었다가 꽃이 지기 시작하면 빗자루를 만들어야겠다. 꽃가지를 한 다발 꺾어서 댕댕이덩굴로 드문드문 묶어 빗자루를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그 꽃비로 아침 이슬이 내린 흙 마당의 어둠을 썩썩 쓸어낼 것이다. 아직 시들지 않은 한 두 송이 꽃이 마당에 떨어지고, 그 마당 너머로 그린 듯이 아름답게 누워 잠든 구름을 헤치고 아침 해가 떠오르리라. 부지런한 참새 한두 마리가 날아와 비질 자국이 선명한 마당을 폴짝폴짝 뛰어다녀도 좋으리라. 나는 어느 때보다 더 향기롭고 명징한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야생화들이 철따라 맵시 자랑을 하던‘들꽃마을’은 텅 비어 있다. 꽃무릇은 한 발짝 늦게 마른 땅을 헤집고 나온 잎이 꽃을 찾아 두리번대는데, 꽃이 피었던 흔적은 간데없고 대궁마저 시들어가고 있다. 구절초나 감국은 꽃망울을 터뜨리기 아직 이른 모양이다. 사람 키보다 훌쩍 큰 개미취의 연보라색 꽃도 시들어가고 있다. 이제 곧 빗자루 국화도 시들 것이고, 마른 가지는 썩둑 잘려나갈 것이다. 그러나 땅에 내린 뿌리는 잘린 가지 밑에서 더 깊고 넓게 퍼져나갈 것이다. 바람에 날려간 씨앗은 어딘가에 터를 잡고 자신의 꿈을 실천해 갈 것이다.
 
  꿈을 꾸기 전에 현실에 너무 일찍 다가선 아이들이 소원을 빈다. 아주 작고 평범한 것들이다. D는‘아빠가 빨리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A는‘아빠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소원한다. C는 ‘엄마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소원이다’고 공책 한구석에 써 놓았다. 아이들의 소원은 곧 이루어질 것이고, 소원이 있던 자리에 꿈이 자랄 것이다. 처음에는 덜 자라고 덜 익어 색과 모양이 확실치 않을 터지만 차차 구체화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은 뿌리를 내리고 자랄 것이며, 새로운 터전을 찾기 위해 하늘 높이 올라갈 것이다.
 
  나는 빗자루국화로 꽃비를 만들어 아이들의 앞길을 썩썩 쓸어 주리라. 아름답고 향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 칼럼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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