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붉은 꽃 없다
사흘 붉은 꽃 없다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9.04.27 14:17
  • 호수 4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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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홍주중학교 교사>
4월 들어서부터 연이어 꽃망울이 터지고 있다. 산수유 꽃과 매화가 꽃잎을 터뜨리면서 진달래, 개나리, 수선화, 민들레, 벚꽃, 목련, 이팝나무 꽃, 튤립 등 수많은 꽃들의 제 자랑으로 봄 판이 호들갑이다. 신록은 또한 어떠한가! 마치 나무 한 그루가 커다란 부챗살을 드리운 듯 봄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너무나 화려함에 겨워 눈이 아플 지경이다. 그러니, 우리 눈에게는 4월이 정말 ‘잔인한 달’이 아닐 수 없다.

올해에는 지리산 자락으로 산수유 꽃을 보러 가지도 않았고, 굽이굽이 섬진강 자락을 따라 내려가서 하동의 매화를 보러 가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4월의 주말마다 내 고향 서천을 찾아가는 일은 빠뜨리지 않았다. 오며가며 벚꽃망울 부풀어 오른 모양을 보았고, 고동빛 가지마다 연초록 잎새가 비어져 나오는 모양을 보았다. 선친의 산소에 솟아나는 풀도 뽑고, 덤으로 고사리나 취나물 등을 한 움큼씩 뜯어다가 밥상머리에서 내 고향의 봄맛을 즐기기도 하였다. 사람은 제각각 어릴 때 자란 고향 지척에서 살아야 더욱 건강을 지킬 수도 있다고 한다. 비록 오가는 길에 졸음이 밀려와서 도중에 적당한 곳에 차를 대고, 잠시 눈을 붙이기도 하지만 정말 즐거운 나들이였다.

지난 4월 초에는 한여름 같은 날씨가 일주일이 넘게 지속되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밖에만 있어도 더위가 느껴졌다. 그 바람에 봄꽃들이 서둘러 꽃잎을 틔웠다. 아마 꽃나무들도 깜짝 놀랐으리라. 봄에 꽃도 피우지 못하고 여름을 맞이하는 줄 알고……. 서둘러서 핀 꽃이기에 서둘러서 지는 것일까? 올해의 꽃잎들이 유난히 빨리 지는 것 같다. 항상 만개한 꽃이 쉽사리 떨어지곤 했건만, 나의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있다. 즉, ‘열흘 붉은 꽃 없다.’는 말이다. 예전에도 꽃이 피어있는 기간의 짧음에 대해 아쉬워한 말일 게다. 그런데 요즘에는 “화무삼일홍(花無三日紅)”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즉, “사흘 붉은 꽃 없다.”라는 말이다. 꽃이 활짝 피었구나 라고 생각한 지 불과 사흘이 못 가서 꽃잎은 제 기력을 잃고 떨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 현상’ 때문에 그런다고 하였다. 앞으로는 이른 봄에도 한여름 같은 날씨가 불쑥불쑥 찾아올 것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봄이 봄 같지 않고, 가을이 가을 같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여름은 어떠한가! 온갖 기상이변으로 인하여 전 지구가 공포에 떠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되었다.

인간이 빚어낸 환경 재앙은 이제 출발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질주하는 단거리 선수들처럼 환경 재앙의 요소들이 여기저기서 뛰쳐나올 것이라고 한다. 그 규모도 갈수록 더 커져서 상상하기조차 싫은 재앙들이 몰려올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인간만이 미래를 예견하고, 유비무환의 자세로 대비책을 세울 수 있다. 일부 동물이나 곤충들도 예지력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코앞에 다가온 상황에 대한 대책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 인간이 아니면, 미래의 상황을 바꾸는 것은 꿈을 꿀 수도 없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갖고 싶은가? 우리 후손에게 어떤 지구를 남겨 줄 것인가? 이제부터라도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때이다. 지금까지는 서로 남 탓만 하였다. 자기 자신은 마치 환경의 파수꾼처럼 여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대표적인 지구 환경의 파괴자다. 현대식 의식주 생활과 사회, 문화생활은 모든 것이 지구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따라서 나 자신이 파괴자임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그 다음에 우리는 모두가 파괴 행위를 줄이는데 생활화하여야 한다.

음식물은 우리 몸이 에너지로 필요한 만큼만 준비하고 소비하며, 옷가지 수 줄이기 및 오래 쓰기, 난방 연료 최소화 사용하기, 먼 거리는 대중교통을,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 이용하기, 분리수거 생활화하기, 직장에서 사무용품 아껴 쓰기, 홀로 빛나는 전등불 끄기 등등……. 우리 일상생활에서 조금만 더 불편하고, 조금만 더 거칠고, 조금만 더 자연 친화적인 사고를 하여야 한다. 거대도시도 규모가 작은 여러 개의 도시로 나누어서 곳곳에 자리를 잡는다면 아주 좋을 것이다. 어느 환경 학자가 지구 스스로 30억 명의 자정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하였다. 이제 60억이 넘은 인구를 절반으로 돌이킬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나의 환경 파괴 행위를 절반 이상 줄인다면, 지구와 함께 우리나 우리의 후손들도 공생할 수 있지 않을까?

사흘 붉은 꽃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열흘 붉은 꽃도 아쉬운데, 사흘 밖에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우리 모두 지구 환경을 제 자리에 돌려놓고, 열흘 붉은 꽃을 즐길 일이다. 열흘 밖에 가지 못함을 아쉬워하면서 변함없는 지구 환경을 굳게 믿고 싶다. 이제 더 이상은 花無三日紅 즉, “사흘 붉은 꽃 없다.”는 말이 그 누구 입에서도 거론되지 않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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