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文先生(문선생)
두 文先生(문선생)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9.05.18 12:00
  • 호수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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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영 칼럼위원
5월은 참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꽃도 아름답지만 신록도 그에 못지않게 아름답습니다. 5월에는 행사도 많아 어린이날, 어버이날을 비롯하여 스승의 날 등이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현직에 있으니, 스승의 날과 무관할 수 없어서 나는 어떤 교사일까 되새겨보게 되었습니다.

전남 영광군의 조그만 분교에서 일 년 동안 근무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나와 같은 성을 가진 문선생을 만났습니다. 부인과 같이 관사에서 거주하던 문선생은 내가 불편한 점이 없나 늘 마음 써 주는 친정 오라비 같은 분이셨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참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특수아를 포함한 1,2학년 복식학급 아이들을 데리고 으름장을 놓는가 하면, 달래고 어르며, 수없이 반복해서 가르쳤습니다. 아침 7시 30분이면 학교에 오는 녀석들을 붙들고 가르치고, 또 가르쳤습니다. 특수아로 치부했던 2학년 남자 아이를 반년 만에 다른 아이들을 쫓아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런 나를 보고 A선생이 어림없다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이곳 아이들을 읍내 아이들과 똑 같게 만들려고 하느냐?’

나는 A선생의 말에 화가 났습니다. 왜 못하느냐?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장담을 했습니다. 적당히 가르치며 시간을 보내려는 그의 무책임한 태도에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늘 친절했던 문선생도 A선생과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역시 학과 공부에 목메는 나같이 어리석은 교사는 아니었으니까요.

문선생은 남달랐습니다. 아침에 비가 와서 염전(鹽田) 길이 뻘밭이 되어서 버스가 다니지 못하면 아이들을 데리러 갔습니다. 자신의 차가 뻘밭에 갇힐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방학 중에 먹으라고 나오는 무상 우유가 무겁다고 동네동네 날짜를 정해 가져다주었습니다. 어찌 보면 참 할일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공부시간에는 학습 문제만 제시하고 아이들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라고 해두고 자신은 신문을 뒤지거나 밀린 업무를 처리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질문하면 그 때 잠깐 들여다 봐줄 뿐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자신의 차에 태워 조개도 캐러가고, 불갑사의 꽃무릇도 보러가는 등 즐기는 날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날 문선생이 사준 자장면을 먹고 부른 배만큼이나 행복해 하였습니다. 가난한 염부(鹽夫)의 자녀인 그 아이들에게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을 쌓아가는 것이 공부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다는 것을 그는 알았던 것 같습니다.

나는 퇴직을 몇 해 앞둔 그 때서야 배웠습니다. 문선생의 교육방법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학교가 행복한 곳이어야 한다는 것을. 평균이 몇 점이냐며 시험 볼 때 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친구와 비교하는 경쟁의 장이 아니고, 서로 어울려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 바로 학교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도 성적에 무관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이라 한다면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고, 지금 머릿속에 그득 담아놓은 지식도 내일이면 절반을, 그리고 그 다음날은 남은 지식의 절반 이상을 잃어가는 것이니, 애면글면 시험성적에 매달릴 것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교사는 아이들 스스로 자신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방법을 찾아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에 불과합니다.

서천군내의 전임지에서 가르쳤던 아이들 엄마를 간혹 만나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정말 행복한 말을 전해 듣습니다. 자기 아이가 내가 담임했을 때 정말 행복해 하였다고. 그것도 말없이 평범하기만 했던 아이의 엄마에게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가장 행복합니다.

지금도 나는 행복합니다. 급작스러운 일로 결근한 다음날 출근하였을 때, 아이들은 앞 다투어 내게 달려들며 묻습니다. 어디 아팠느냐고? 어제는 선생님이 안 와서 정말 재미없었다고, 제 말을 못 들을까봐 한 음정 높여 묻는 아이들이 있으니까요.

지금은 퇴직해서 광주의 자택에 계실 문선생님이 문득 뵙고 싶어집니다.

<기산초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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