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의 길
중립의 길
  • 편집국 기자
  • 승인 2010.03.02 11:12
  • 호수 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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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국 칼럼위원

김승국 칼럼위원.
‘중립(中立)’의 뜻풀이는 이렇다; ①어느 편에도 치우침이 없이 그 중간에 서는 일. 양자의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아니함. 중정(中正) 독립. ②곧아 한쪽으로 기울지 아니함. ③어느 쪽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지 않고, 적대하지 않음 ④교전하는 나라(교전국)의 어느 쪽도 편들지 아니함. 교전국 쌍방에 대하여 공평하며, 원조를 하지 않음. ⑤국제법상 국가 간의 분쟁·전쟁에 관여하지 않음. 어떠한 군사동맹에도 참가하지 않음.

개인ㆍ국가 간의 중립을 지키려면 위와 같은 상태를 유지해야한다.

그런데 어느 편에도 치우침이 없이 중간에 서는 ‘엄정중립’의 삶의 태도를 지키기 어렵다. 중립적인 인생살이가 수월하지 않은 것은 이기적인 심성 때문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동물이어서 자기에게 도움을 주는 쪽을 선호한다.

이해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사람일수록 상대방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적대하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차별하거나 배제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중심의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남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데 익숙하며, 이렇게 하는 가운데 상대방을 적대시하는 경우가 생긴다.

개인의 삶이 이러할진데 국가의 경우는 훨씬 어려워진다. 이웃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났는데 엄정중립의 외교노선만 고집하다가 전쟁의 불똥이 자국(자기 나라)으로 튀면 어쩔 셈인가?

전쟁의 불길이 자국에 옮겨오기 전에 동맹관계를 만들거나 기존의 동맹관계에 편입되어야 국가의 안전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중립국이 되어 어느 쪽에도 편들지 않고, 전쟁에 영향을 끼치는 행동을 일체 피하는 게 유리한가? 불리한가? 큰 나라에 빌붙어 동맹관계에 안주하는 게 유리한가? 중립국이 되는 게 좋은가?

‘중립국(中立國)’에서 중요한 단어는 ‘중(中)’인데, 중국인들의 ‘중(中)’에 대한 관점에서 배울점이 많다.

아마 중국인들처럼 ‘中’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중국인들은 모난 것, 사각형, 뾰족한 것을 기피하고 모나지 않는 것, 둥근 것, 원형, 둥글둥글한 것을 좋아한다.

‘中’의 자원(字源; 문자가 구성된 근원)은, <어떤 것을 하나의 선(線)으로 꿰뚫어 ‘속·안’의 뜻을 나타냄. 갑골문(甲骨文)·금문(金文)에서는 특히 군대의 중앙에 세운 깃발 모양으로, ‘속’의 뜻을 보임. ‘맞다, 맞히다’의 뜻일 때에는, 속으로 들어가는 뜻을 나타냄>이다.

한자 사전의 ‘中’을 찾아 자원(字源)을 찾으면, ‘中’자가 갑골문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변천한 그림을 볼 수 있다. 둥근 원의 한가운데를 엄정중립의 선(線)이 지나가는 상형문자가 ‘中’자이다.

모나지 않는 원만한 세상 속의 중립지대를 상징하는 ‘中’자는 중립화의 상징적인 단어이다. 모나지 않는 원만한 국제관계 속의 중립지대를 상상하는 게 중립화 구상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주변의 원만한 국제관계 속에서 한반도의 중립화(중립을 가다듬어냄)가 성공할 수 있으며, 그러한 국제관계의 중앙 지점을 정확하게 찾아야 중립화를 제대로 이룰 수 있다. 중립화를 위한 중앙 지점을 찾으려면 ‘시중(時中)의 관점’이 필요하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中’의 가치는 중국의 거의 모든 고전에 들어 있다. 그 중에서 중국 고전의 원전인 <주역(周易)>에 ‘中-時中’의 사상이 넘쳐난다;<주역> ‘계사전(繫辭傳)’ 下, 9장에 “6효가 서로 섞이는 것은(六爻相雜) 오직 그 때나 사물에 따른다(唯其時物也)”라는 구절이 있다.

<주역>의 각 괘(卦)는 매순간 그 때마다 직면하는 전체적인 상황을 나타내고, 그 괘의 각 효(爻)는 행위자들의 그 때 거기에서의 위치를 동시에 하나로서 나타내준다.

<주역>에서 말하는 ‘시물(時物)’이란 ‘바로 그 때 동시에 거기에서 하나의 전체로서 드러나는 물[物; 사태] 자체, 존재’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물(時物)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실천이 바로 ‘시중(時中)’인 것이다.(김재범 <주역 사회학>86~87쪽)

이처럼『주역』의 ‘時中’에 나타나는 ‘中’의 세계관에 따라, 한반도 주변의 時物(사태ㆍ정세)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매순간마다 중립의 가치를 확립하면서 한반도의 중립지대화를 지향하는 게 바람직하다.

<주역>의 세계관이 반영된 태극기의 둥근 원 속의 음양이 ‘中-時中’의 조화를 이루어 통일된 세계를 지향하듯이, 한반도 주변국의 조화를 도모하면서도 ‘중용(中)의 길(中道)’을 걷는 중립화 통일을 이룩하면 좋을 것 같다.

<언론인 평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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