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없는 골목
자동차가 없는 골목
  • 편집국 기자
  • 승인 2010.03.15 10:52
  • 호수 5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 병 상 칼럼위원

▲ 박 병 상 칼럼위원
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고 했던가. 유난히 추웠던 이번 겨울에 잔뜩 쌓인 눈이 아파트 후미진 곳까지 말끔히 녹자 과연 따뜻해졌다. 하지만 자연에도 시샘이 있는 법.

3월 들어 영하의 날씨가 잦아들며 남녘의 꽃소식이 올라올 즈음, 제법 큰 눈이 쌓였다.

하지만 눈은 따뜻한 오후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이내 사그러들었는데, 그늘진 골목에는 그냥 남았다. 학교에서 돌아온 꼬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모처럼 뽀드득거리는 눈을 뭉치며 노는 모습을 그날 저녁 뉴스 시간에 바라볼 수 있었다. 곧 신록의 계절이 다가올 것이다.

어릴 적 생각에 잠겼던 눈을 뜨고 이내 현실로 돌아와 뉴스 화면을 바라보자, 아이들이 눈싸움하는 공간은 골목이 아니라 근린공원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자동차가 밤낮 없이 지나가는 곳이 도시의 골목 아닌가. 그런 골목에서 아스팔트 바닥에 달라붙은 눈을 뭉치기 어렵겠지만 세 걸음 떼기 무섭게 경적 울리며 다가오는 자동차 때문에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다닐 수 없는 노릇일 게다. 골목에서 눈싸움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릴 적 기억에 마음을 빼앗긴 착각이었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면서 코흘리개 꼬맹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철없는 아이를 학교에 보낸 학부모도 걱정이 많겠지만 교실과 운동장 가리지 않고 뛰는 천방지축들을 온전히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교사들도 걱정이 많은 계절이 찾아온 거다.

입학 후 한 달 정도는 마음을 졸이며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올 수 있지만 바쁜 일상에서 허구헛날 아이를 챙길 수 없는 일.

어지간하다 싶으면 신신당부하고 아이 혼자 학교를 다니도록 유도할 텐데, 부모는 자동차가 늘 걱정이다. 꼬맹이들의 등하교 시간이면 직장에 늦은 자동차들이 속도를 낼 시간과 얼추 일치하지 않던가.
아이들만이 아니다. 바구니 들고 시장 골목에 들어서는 주부들도 마찬가지다.

시도 때도 없이 빵빵 거리며 앞뒤에서 다가오는 자동차를 피하며 장을 보느니 차라리 대형마트로 가서 1주일 치 반찬거리를 한꺼번에 사는 편을 택하고 싶다.

집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놀이터로, 놀이터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골목도 마찬가지다.

등하교 시간에 맞춰 그 골목의 자동차 출입을 제한한다면 아이들은 물론이고 부모들과 교사들도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눈이 내린 날을 제한한다면 꼬맹이는 물론이고 온 동네 이웃사촌들이 모여 흥겨운 놀이마당을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금요일 밤부터 월요일 새벽까지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골목은 동네의 잔치마당을 일요일마다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서로 잘 알게 된 동네 사람들은 우정을 돈독히 하게 되고 웬만한 일이 아니라면 이사 가고 싶지 않을 것 같다.

* 인천도시생태연구소 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