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 부 기
뜸 부 기
  • 편집국 기자
  • 승인 2010.03.22 17:51
  • 호수 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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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웅 순 칼럼위원

▲ 신 웅 순 칼럼위원
뜸부기는 갔다. 발자국 소리조차 남기지 않고 떠났다. 땅거미 질 무렵 ‘뜸, 뜸, 뜸’  여름 저녁 노을을 붉게도 물들였던 뜸부기. 논둑에 자신의 울음을 버리고 뜸부기는 어디론가로 날아갔다.

듣기만 했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어떻게 생겼는지조차도 모르는 뜸부기. 잊을 법도 한데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나는 왜 그 울음 소리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초승달 가까이 뜬 저녁 논빼미에서 그렇게도 울어대던 뜸부기. 그 뜸부기가 이제는 원고지의 빈칸에서 옛 모습, 그대로 서럽게도 울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나는 고향을 떠났고 논배미는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 후 십여년을 부모님은 어찌 사셨을 것인가.

어떻게라도 자식들과 살아야했던 부모님은 뜸부기의 먼 울음만큼 고독했으리라.

땅만 믿고 살아야 했기에 설움은 뗏목이 되어 강물로 강물로 흘러 갔으리라. 이제는 논배미도 흔적이 없고 개천도 흔적이 없다. 그것들은 직선의 시멘트 물길만을 남기고 영원히 사라졌다.

뜸부기는 자연과 문명의 변곡점에서 슬피 울다 아무도 모르는 저녁, 이별 인사도 없이 떠났다. 뜸부기 울음이 뜸해져 갈 무렵 농촌의 젊은이들도 하나 둘씩 회색의 도시로 떠나기 시작했다.

나도 그 대열의 한 사람이었다. 물가에서 떠나는 우리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침표가 되어 소리 없이 울며 마지막 알을 품고 있었을 뜸부기. 뜸부기의 울음은 마지막 미사를 알리는, 차라리 목이 쉰 종소리였다.

온 들녘을 점령하던 달밤 무논의 개구리 울음.

개천가 물풀 위를 폴짝 폴짝 뛰어다니던 소금쟁이들. 저녁 벼포기 어둠 사이로 슬슬슬 기어다니던 어린 참게들, 푸른 하늘로 구름처럼 하얗게 밀려가던 메뚜기떼들,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미꾸라지 사냥하러 나온 목이 긴 백로들.

이 모든 것들은 들녘에서 그렇게 마지막 야외 미사를 드리고는 그 곳을 떠났다.

미처 떠나지 못한 것들은 뜸부기 메아리와 함께 거대한 기중기에 들려 땅 속 깊숙이 내팽개쳐 처절하게 묻히고 말았다. 훗날 그날의 증언을 위해 화석이 되어 지금쯤 깊은 잠에 영원히 빠져들었을 것이다.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던 서울 가신 오빠는 뜸부기가 울어도 오지 않았다.

사랑하는 누이 동생에게 비단 구두 사준다고 해놓고 오빠는 새벽에 말을 타고 독립 운동하러 떠났다.

비단 구두를 사가지고 온다고 믿었던 누이 동생은 시집을 가고 뜸북이는 몇 십년을 논에서 울다 길일을 택해 영원히 이 땅을 떠났다.

일제 강점기가 따로 있는가. 이 땅에 살던 새들도 독립 운동하러 갔는지 한 번 간 새들은 다시는 오지 않았다. 따오기가 그랬고, 두루미가 그랬고 뜸북이가 그랬다.  

사람들은 이 땅에 얼마나 더 많은 구두 발자국들을 남겨놓아야 하는가. 사라지는 것들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슬프고 가슴 아픈 것들이다.

뜸부기가 떠난 이후 아버지는 피붙이 같던 논빼미를 팔았다.

아련한 뜸부기의 울음 소리는 우리 민족의 슬픔만이 아닌, 우리 가족사에 있어서도 가슴 아픈 사연이었다.

우리를 먹여살렸던 땅을 일제에게 빼앗겼을 때, 가족들을 먹여 살렸던 논배미가 다른 사람에게 팔렸을 때, 뜸부기는 논둑에서 서럽게도 울다 어디론가 노을 속을 훌쩍 날아갔을 것이다.

뜸부기, 그도 이제는 내 가슴에서 떠나보내야 한다. 멀리 멀리 날아가 세상에서 제일 평화로운 곳에서 ‘뜸, 뜸, 뜸’ 실컷 울게 떠나보내야 한다.

뜸부기의 울음은 아버지의 울음만이 아니다. 뜸부기의 울음은 누이 동생의 울음만이 아니다.

우리 민족사의 뒤안길에서 나라를 찾기 위해 떠난 남편을 기다리며 우는, 아내의 금이 간 속울음이기도 하다.

이제는 그 울음도 들을 수 없는 참으로 딱한 신세가 되었다. 한 마리 새의 울음이 반세기가 지났어도 잊혀지지 않는 것, 이것이 이 강산에서 내가 살고, 내 후손들이 살아가야하는 이유 전부이다.

어디선가에서 못 다 운 울음은 비바람으로라도 울기 마련이다. 들것에 실려서라도 뜸부기는 끝내 병원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 시조시인․평론가, 중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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