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에서 대접받고 있는
박경수 선생
충북 영동에서 대접받고 있는
박경수 선생
  • 편집국 기자
  • 승인 2010.04.05 18:42
  • 호수 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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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선 희 칼럼위원

서천의 대표적인 소설가 박경수 선생. 선생을 두고 농민문학가다, 입지적인 인물이다, 향토작가다, 독재시절 민주화에 앞장섰던 잡지 ‘사상계’의 기자로 장준하 선생을 곁에서 모신 민족 문학가라고들 말한다. 선생은 ‘신동아’에 연재한 <동토>로 한국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그 외 흙의 문학상, 농민문학상 등 다수의 수상경력이 선생의 문단활동을 말해준다.

한산 죽촌리로 귀향한 후 <장준하 평전>을 집필했다. <향토기>에는 서천의 향토어가 고스란히 살아있다. 한국문단과 서천 문학을 대변하는 박경수 선생은 지금 병환으로 서울의 한 병원에서 요양 중이시다.

박경수 선생이 몇 해 전부터 부인과 함께 요양하시던 중 경제적 어려움으로 한산 죽촌리 집이 매각할 위기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은바 있다. 이에 선생을 따르는 후배들과 군관계자가 자리하여 <동토>의 집필지를 군이 매입하여 문학관, 교육관 등으로 조성하여 문화, 예술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보도기사가 있었다.

작년 3월에는 박경수 선생의 집필지를 둘러보고 있는 군의회 의원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기사도 보았다.  그러나 최근 이 일들이 불발에 그칠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까닭이 궁금하다. 현실 경제논리 때문인지 박경수 선생의 문학적 평가 때문인지 말이다. 어떤 일을 추진하다 멈춘다면 그 까닭이 있을 것인즉 그 까닭이 궁금하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박경수 선생에 대한 여론형성이 안되어 이런 결정이  내려지고 있다는데 이는 지역의 문화 예술 자산을 소홀히 하거나 문화 예술에 관심을 두지 않음을 보여주는 예가 된다. 박경수 선생에 대한 한국문단에서의 위치나 작품성, 농민문학가로서의 위상,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끼친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여론을 의식한 결정이라면 군관계자는 물론이고 군의회, 박경수 선생을 따르는 후배와 지역민들도 지금의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쯤에서 선생을 따르던 한국문단의 후배들과 농민문학가들의 증언, 활동상을 담은 자료를 모으고 작품을 연구하고 절판된 작품들을 재발간하는 등 제대로 조명할 기회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서천의 전체 문화예술을 발전, 유지시켜나가는 서천문화원이 나서서 해주면 뜻 깊은 일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서천에서 문학을 말 할 때, 그중에서도 소설을 말 할 때 감히 한산 죽촌리 박경수 선생을 제외하고는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박경수 선생의 가난한 삶으로 인하여 학연이 없고 그런고로 따르는 후학이 없다하더라도 많은 작품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별개로 평가받아야 한다.

문인들에 대한 평가와 기리는 사업은 사후에 이루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생가나 집필지는 사라지고 사용하는 문방용품과 생활용품은 훼손된 후다. 한산 죽촌리 박경수 선생의 집이 매각됨으로써 현대를 사는 우리와 후손들에게 보여줄 근·현대를 아우르는 작가의 시대정신과 창작의 혼, 고뇌의 흔적들이 사라질까 염려된다.

얼마 전 충북 영동의 농민문학관을 다녀왔다. 이곳은 제1회 흙의 문학상과 농민문학상을 수상하고 계간 농민문학을 발행하고 있는 소설가 이동희 선생의 생가이다. 농민문학가들 자료가 보관되어 있는데 서천의 소설가 박경수 선생의 소수 자료와 얼굴 모형이 기념관 이층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동희 선생은 “농민문학을 말할 때 박경수 선생을 빼놓고 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다. 농민문학가들의 생가가 이러저러한 까닭으로 사라진 상황에서 박경수 선생의 집필지 보존은 농민문학사 입장에서도 중요한 일이란다. 지역에서 홀대받는 박경수 선생이 영동의 농민문학관에서는 대접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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