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돈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도 돈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편집국 기자
  • 승인 2010.11.29 12:57
  • 호수 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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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갑 칼럼위원

 

▲ 현 종 갑 칼럼위원
정호승 시인의 시 낭송회에 갔었습니다. 학생들은 공부하느라 함께 가지 못하고 저 혼자 가서 들었습니다. 정 시인이 쓴 시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어떤 중학생이 ‘그늘’을 ‘돈’으로 바꿔서 인터넷에 올렸답니다. 시인의 말을 듣고 다들 웃음보를 터뜨렸습니다. 하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 않았습니다. 여러 모습으로 변신하며 원작 못지않게 많이 떠돌고 있는 그 모방시를 조금 더 보고, 돈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나는 돈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나는 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나는 한 다발의 돈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 사람도 돈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 나무그늘에 앉아 / 파아란 배춧잎을 세어 보면 /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먼저 심청이 몸값 얘기입니다. 천하의 심청이도 올해 같으면 별거 아닙니다. 효녀니까 시세보다 높이 쳐주더라도 공양미 3백석이면 600가마, 곱하기 15만원 해 봤자 서천의 좋은 아파트 한 채 값도 안 됩니다. 시대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고 쌀값으로만 쳐서 그렇습니다.

70, 80년대 학창시절 하숙비가 쌀 한 가마 값이 채 안 되었으니 하숙비 하나로만 견주면 대략 3분의 1정도로 쌀의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실감이 덜 나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문경 석탄박물관 자료에 1981년 당시 문경시청 공무원 월급이 119,546원일 때 쌀 한가마니 값은 64,387원이었던 것으로 나와 있답니다.

쌀 두 가마면 공무원 한 사람을 부리고도 남았네요! 쌀값이 농민 값이라는데, 올해도 풍년인 줄 알았으나 ‘빛 좋은 개살구’(농사꾼 친구 한병권 얘기)여서 수확량까지 크게 떨어졌다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소설 속의 돈 얘기는 기가 막힙니다. 현진건의 ‘고향’(1922년)에는 열일곱 살 된, 자기와 혼삿말이 오고간 처녀가 겨울에 별안간 간 곳을 모르게 되어 총각이 알고 보니, 그 아버지 되는 자가 단돈 20원에 대구 술집에 팔아먹었더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운수 좋은 날’(1924), 첫 번에 삼십 전, 둘째 번에 오십 전 도합 팔십 전을 아침 댓바람에 벌고 나서, 사흘 전부터 설렁탕 국물이 마시고 싶다던 아내에게 설렁탕도 사 줄 수 있음에 흐뭇해하다 돈이 막 벌려 무려 삼십 원을 벌고 1원을 술값으로 날린 뒤 설렁탕을 사들고 집에 갔을 때 이미 싸늘해진 ‘오라질’ 아내가 야속하기만 하던 인력거꾼 김 첨지의 80전! 김동인의 ‘감자’(1925년)에서는 15살 복녀가 20년 연상의 홀아비에게 80원에 팔려 시집을 가고, 복녀의 내연남 왕서방은 100원을 주고 처녀를 사서 새장가를 가려다 살인납니다.

실화로 전하는 돈 얘기. 이봉창 의사의 사람됨을 믿은 김구 선생은 만난 지 얼마 안 된 이봉창 의사에게 거금 1,000원을 덥석 맡깁니다. “일전에 선생님이 내게 돈 뭉치를 주실 때에 나는 눈물이 났습니다. (중략) 나는 평생에 이렇게 신임을 받아본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처음이요, 또 마지막입니다. 과시 선생님이 하시는 일은 영웅의 도량입니다.” 감격한 이봉창 의사는 일본인 공장에 취업하여 월급 80원을 받으며 기다리다 김구 선생으로부터 돈 300원과 폭탄 두 개를 받아 일본으로 일왕을 죽이러 갑니다. 이듬해(1932년) 윤봉길 의사는 거사 직전 김구 선생과 마지막 아침밥을 먹던 중 이제 곧 쓸모가 없어질 자신의 6원짜리 고급 시계와 김구 선생의 2원짜리 낡은 시계를 바꾸자고 하여 바꿔줍니다. 윤 의사가 홍코우 공원으로 떠날 때 김구 선생은 목이 메어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하고 인사합니다.

성환고의 김동근, 서천고의 김주철 교사가 시국선언을 하고 민주노동당에 달마다 만원씩을 후원해서 각각 해임과 3개월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시국선언은 신문광고에 이름 석 자 올린 것이라 그걸로 중징계를 할 수는 없을 테니 결국 돈 1만원이 문제였습니다.

유명강사들 시간당 강사료가 20만원, 교사들도 3만원은 기본인데, 처자가 딸린 가장들인데, 한 달에 한 번 한 시간 수업 수당도 안 되는 돈을 준 대가치고는 좀 심했다는 생각입니다. 하긴 땡볕에 반나절 일한 값이라고 하면 얘기가 달라지나요? 그래도 어째 좀 쩨쩨하지 않은가요! 이완용은 처녀 몸값이 100원도 안 나가던 시절에 나라 팔아 높은 벼슬과 15만원을 챙겼다 하고, 전두환은 동문회에 가서 강연 한 번 하고 300만원을 받았다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중학생처럼 읊어 봅니다. ‘나도 돈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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