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호순 연재 칼럼 / 지역에서 희망을 찾자
■ 장호순 연재 칼럼 / 지역에서 희망을 찾자
  • 장호순 순천향대 교수
  • 승인 2010.11.29 12:59
  • 호수 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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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 사람농사를 준비하며

 

▲ 장호순 순천향대 교수
대다수 사람들에게 겨울은 힘들고 우울한 계절이다. 풍성했던 초록 들판이 사라지고 누런 나대지가 드러나는 겨울은 마음마저 한기를 느끼게 한다. 오후 5시면 사라지는 저녁 해는 우리 인생도 그만큼 짧아진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대학교수인 나에겐 또 다른 짐이 초겨울 어깨를 움츠리게 만든다. 마지막 학기를 보내는 4학년 학생들의 모습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4학년 2학기를 마치기 전에 취업을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는 취업했다는 4학년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올해부터는 졸업생 사은회를 없애기로 교수들이 결정했다. 취업걱정에 시달리는 제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받기가 민망해서이다.

대학교수인 내게 취업지도는 가장 어려운 임무이다. 학생들에게 꿈을 갖고 도전하라고 말하지만 막상 그들에게 권할만한 일자리는 없다. 그렇다고 눈높이를 낮추어 비정규직이나 지방에서 일자리를 구하라고 조언할 수도 없다. 제자들의 꿈과 희망을 꺾는 스승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조언은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직업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둥, 연봉보다는 적성과 보람이 더 중요하다는 둥.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기자나 PD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실제로 기자나 PD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입학하는 학생은 드물다. 고등학교 시절 TV를 보다가 신문기자나 방송PD가 하는 일이 멋져 보여 신문방송학과를 선택한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언론 분야의 일이 매우 힘들면서도 급료가 낮은 3D 직종이라는 사실은 대학에 들어와 비로소 조금씩 알게 된다. 그럼에도 그러한 일자리조차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그나마 아직도 내게 제자들을 보내달라는 언론사는 중소도시 지역신문들이다. 대부분 해당 지역출신 학생들이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나 지역신문에 취업하겠다는 학생도 거의 없을뿐더러, 자기 고향에 돌아가 지역신문 기자를 하려고 하는 학생들도 거의 없다. 이번 학기도 세 곳의 지역신문에서 졸업생 추천을 요청했지만, 단 한 명의 학생도 찾아내지 못했다.

내가 지역신문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이 1996년이었다. 당시 지역신문은 법적인 지위도 사회적인 인정도 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지방선거 후보자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고 신문을 정간시키던 시절이었다. 물론 그 이후 많이 달라졌다. 지역신문발전법이 제정되어 정부지원도 생기고, 지역사회에서도 지역신문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현재의 지역신문 중 상당수는 해당지역에서 가장 발행부수가 많은,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신문을 일터로 삼겠다는 젊은이들은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다. 지역신문의 열악한 근무여건 탓도 있지만, 도시의 편리함과 화려함 속에서 성장해온 젊은이들이 농어촌 지역사회에 정착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농촌이나 자연은 낯설고 두렵고 불편한 존재일 뿐이다. 인기 TV 프로그램처럼 “1박2일”로 다녀올 수는 있어도 터를 잡고 산다는 것은 상상불가이다.

얼마 전 충남의 한 지역신문으로 3학년 학생들 10여명을 데리고 견학을 갔었다. 3년 전 그곳에 취업한 제자가 후배들을 무척 반겼다. 자기 또래 20대 젊은이들을 만나 본지 참 오랜만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나의 소개로 중소도시 지역신문에 취업한 제자들 중 대부분은 여전히 지역신문에 몸을 담고 있다. 그러나 혈기왕성한 20대 청년들을 농어촌 읍면지역에 가두어 놓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대도시에 취업한 친구들에 비해 자신은 고립되고 낙오되었다는 불안감을 갖는다.

지역신문은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살려는 지역주민들에 관한 소박한 기록이다. 따라서 자연과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존중심이 없다면 지역신문에서 일할 수 없다. 요즘 세태에 그런 젊은 일꾼을 대학에서 길러내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할 것 같다.

학생들에게 지역신문에 대해 강의하기 전에 인간과 자연에 대해 먼저 가르쳐야겠다. 언론을 통해 어떻게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야겠다.

덕분에 내게 올 겨울은 새로운 강의안을 마련하는 계절이 될 것 같다. 지역신문에서 일할 사람농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화학비료와 살충제로 범벅된 돈벌이 농사가 아니라, 땅심과 사람 손으로 생명을 키우는 유기농과 같이 지역신문 사람농사를 튼실히 지어보고 싶다. 아직 겨울이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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