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의 역사
■ 연의 역사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1.02.12 13:37
  • 호수 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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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의 ‘전술비연’, 통신수단 활용
조선 영조 때부터 민속놀이로 정착

우리 농경사회에서 연날리기는 주로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행해졌다.
보름때면 연에 ‘액(厄)’자 써서 다가올 액운과 함께 멀리 날려보내는데 이를 ‘액막이연이라 불렀다. 세계 어디에서나 연을 날리는 아이나 어른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연은 지구촌 곳곳에 퍼져 있다. 연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알아본다.


역사의 기록에 등장하는 최초의 연은 기원전 400년경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친구였던 알투스가 만든 것이라 한다. 동양에서는 기원전 200년경 중국 한나라 장수 한신이 군사용으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최초이다. 학자들은 연이 종교적인 이유나 군사적인 목적 등을 위해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편에 보인다. 647년 선덕여왕이 즉위하자 비담과 염종 등이 군사를 일으켜 여왕을 폐하려 했다. 당시 큰 별똥별이 여왕이 주둔한 월성 쪽으로 떨어지자 “여왕이 패망할 징조”라며 백성들이 동요했다. 이때 김유신 장군이 연에 허수아비를 달아 불을 질러 올려보내면서 “어젯밤 떨어진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소문을 내 사기를 올려 반란군을 진압했다는 것이다.


연을 군사적으로 가장 잘 활용한 사람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연에 여러가지 모양과 색깔을 넣어 군사작전시 섬과 섬사이의 통신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우리 '전통방패연'은 가운데 방구멍이 있어서 바람이 약하거나 강할 때도 날릴 수 있으며, 하늘을 전후좌우 자유자재로 날릴 수 있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장 과학적인 연이라 한다.


이순신 장군을 이를 이용하여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충무공 전술비연’은 총 55종의 문양과 뜻이 전해지고 있다.군사적으로 사용되던 연이 민간에 널리 퍼진 것은 영조때부터라고 한다. 영조가 연날리기와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 탓에 정월대보름이 되면 전국에서 연 날리는 사람들이 한양 수표교에 모여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이렇게 퍼진 연날리기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겨울철 민속놀이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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