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경제학
결혼의 경제학
  • 장호순 교수
  • 승인 2012.02.20 14:21
  • 호수 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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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제자들 중에는 결혼소식을 알려주는 제자들이 더러 있다. 학창시절 비교적 나와 가까이 지낸 제자들이다. 전화로 알려오면 결혼을 한다는 것이고, 직접 청첩장을 들고 찾아오면 주례를 서달라는 경우가 많다. 제자의 결혼주례를 서 주는 것은 교수의 특권인 동시에 나를 스승으로 선택해준 제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필자는 제자들의 주례요청을 거절하지 않는다.
5년 전 처음 제자의 주례부탁을 받고 하객앞에 설 때는 무척 긴장되고 떨렸지만, 이제는 그것도 익숙해져 주례를 즐기는 수준이 되었다. 주례사도 5년전 처음 사용한 주례사를 조금 수정해 반복사용한다.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제자들에게 주는 축하와 당부의 말이 크게 다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진부하고 식상한 주례사가 되지 않도록 노력은 한다.     간혹 친척이나 친구 자녀의 결혼식장에 가면 신랑신부보다 주례에 더 주목하곤 한다. 다음 달에도 한 차례 제자의 주례가 예정되어 있다. 올해 나이 38살인 제자가 39살의 신부를 맞이한다.
요즘 젊은이들의 결혼이 늦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그에 대한 대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부모가 결혼하라고 잔소리를 해대도 결혼않는 젊은이들에게 정부가 결혼을 강요할 순 없다. 그러나 과도한 수도권 집중화 현상만 해소되어도 많은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짝과 함께 행복한 결혼생활을 일찍 시작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한국 젊은이들의 결혼연령이 늦어지고, 출산율이 낮아진 배경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수도권 과밀화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결혼을 하는 이유는 안정적 생존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인데, 그 생존기반은 경제력이다. 그래서 남성이 경제권을 주도하고 있는 인류사회에서는 아무리 힘세고 섹시한 남자라도 경제력이 없다면 결혼후보자로서는 점수가 떨어진다. 불과 50여년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신랑감 1순위는 농지를 소유한 농촌총각이었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변화하면서 농촌지역의 남성들은 배우자를 구하기 힘들어졌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도시 직장남자들에게 밀린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이나 일본의 농촌총각들은 자국에서 여성을 구하지 못하고 외국에서 신부들을 구해 와야 했다.
도시처녀들은 물론이고 농촌처녀들도 농촌총각을 기피하는데, 그 이유는 농촌이 싫어서가 아니라 경제적 빈곤이 두렵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도 여성의 교육수준이 크게 향상된 것도 미혼자들의 짝짓기를 어렵게 만들었다.  인종과 국적을 막론하고 지구상의 여성들은 자신들보다 교육수준이 높은, 그래서 경제적 잠재력이 높은 남성을 결혼상대로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농촌에서 시작한 여성의 결혼기피가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대학을 나와도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 힘들어지면서 미혼남성들의 경제력이 크게 떨어진 탓이다.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경제적 기대수준 또한 높아진 여성들이 선택할만한 높은 경제력을 가진  미혼남성들이 부족한 탓이다. 여기에 저가 주택의 부족, 결혼비용의 급증 등이 더해지면서 한국사회는 졸지에 노처녀-노총각 과잉국가로 전락했다. 
결혼적령기를 놓친 지금의 도시 젊은이들이 겪어야 하는 개인적, 가정적 고통이나 국가사회적 불이익을 줄이기 위해서도 수도권 집중화 해소가 시급하다. 지금과 같이 수도권에 청년층 일자리가 몰려있고, 그로인해 결혼적령기 젊은이들이 수도권에 과잉집중된 상태에서는 ‘88만원세대’라는 빈곤독신층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수도권에 몰려있는 일자리를 지방도시로 분산시키면, 저렴한 주거비용과 생활비용으로 단란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필자는 주말도 없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제자들의 결혼식 주례를 해주어야 할지 모른다. 그래도 그때가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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