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세상’의 우울한 역설
‘스마트 세상’의 우울한 역설
  • 정해용 칼럼위원
  • 승인 2012.05.08 11:17
  • 호수 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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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스마트해졌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고 사진을 찍고 SNS 소통을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하고 TV를 보거나 스마툰(이동통신 수단으로 보는 만화)을 보거나 전자책을 읽는다. 스마트TV, 스마트 모니터, 스마트 청소로봇, 스마트 에어컨, 스마트 홈패드 등으로 꾸며진 스마트 홈은 주인이 집밖에서도 자유롭게 가전제품을 작동할 수 있는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스마트센서와 스마트유리 등 스마트 건축기술에다 스마트 보안, 방재시설을 포함한 완벽한 일체형 스마트 홈을 갖춘 스마트주택은 현대 인류의 첨단 전자기술로 구현될 미래주택의 표본이다. 사람들은 스마트카드 하나로 쇼핑과 교통을 동시 해결한다.
여기에 조만간 전자주민증이나 신분증, 의료보험카드 기능까지 추가될 예정이라 하니 그야말로 스마트카드는 만능키가 될 것 같다.  


예전처럼 열쇠를 꽂거나 리모컨을 작동하지 않아도 저절로 문이 열리고 전원이 켜지는 스마트키 자동차가 등장한 것은 이미 한참 전의 얘기다. 목적지를 말하기만 하면 알아서 집까지 차를 이동시켜 주는 ‘스마트 네비게이터’가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
스마트카드를 장착한 자동차는 고속도로나 유료도로 요금소에서 굳이 멈출 필요가 없다. 적외선 스마트센서로 자동화된 ‘스마트 하이웨이’가 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나 회사 등 주차장도 적외선카드나 RF카드를 통해 출입을 자동 통제한다. 일명 ‘스마트 주차장’이다. 버스의 운행상황은 각 정류장에 설치된 단말기는 물론 안방의 컴퓨터나 개인 스마트폰에서도 읽을 수 있다. 스마트교통 시스템의 발달 덕분이다.
도시 전체가 어느 한 곳 빈틈없이 CCTV로 관찰되는 관제시설을 갖추고 보안 방재에서 교통 방범 복지 보건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자동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스마트시티에선 쓰레기수거차도 볼 수가 없다. 모든 쓰레기는 대형 우체통을 닮은 수거 부스에 넣기만 하면 지하통로의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하치장으로 자동 운반된다. 아이들이 스마트스쿨로 등교하면 교문, 또는 교실문이 감지하여 자동으로 출석기록을 남긴다.


과연 스마트한 세상이 된 것일까. 스마트라는 어휘의 본뜻을 따지기 전에 요즘 매스컴들이, 상인들이, ‘스마트’라는 표현을 어디에 주로 가져다 붙이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전통적 개념으로 바꾸면, 대체로 이런 것들이 해당하는 것 같다. 만능, 효율, 신속. 그러니까 적어도 하나의 물건으로 두세 가지 이상의 기능을 이용할 수 있거나 예전보다 획기적으로 작업의 단계와 소요시간을 줄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여기에 의외성이 더해진다. 이 물건에서는 흔히 기대하지 않는 의외의 기능.
우리나라의 ‘스마트화(化)'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사실 새삼스런 일도 아니다. 만능 효율 신속, 이 세 가지 모두가 ‘빨리빨리족’이라 할 수 있는 현대 한국인들의 취향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그런데 스마트(smart)란 어휘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Smart는 ‘영리하다 멋있다 빈틈없다’와 같은 뜻을 지닌 말이다. 그게 다가 아니다. 그것은 동사로서 ‘쓰리다 아프다 욱신거리다 상심하다 후회하다’와 같은 뜻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아픔 비탄을 나타내는 명사로도 쓰인다.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기계 한 대가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고 그런 기계를 움직이는 한 사람이 수십 수백 명의 일할 몫을 차지하는 동안 그 일을 나눠 하던 많은 사람들이 일을 잃고 있다.
첨단 기술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운영하느라 인간다운 삶을 잃어버린 ‘스마트 인간’과 그 ‘스마트 기술’에 할 일을 빼앗긴 더 많은 ‘잉여인간.’ 둘 다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임에 분명하다. 진정한 스마트 세상이라면 모든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함께 행복해져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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