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농기구에 담긴 자연친화·생태주의
전통 농기구에 담긴 자연친화·생태주의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3.01.07 13:32
  • 호수 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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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면서도 다양한 기능, 강한 지역성
자연에 의존한 농사방식 담겨있어…

동력을 사람의 힘에 의존하던 우리의 전통 농사 연장들은 매우 친환경적이다.
주변의 자연 생태 환경을 면밀하게 고려하거나 그에 적응해야만 농사를 통한 삶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형태가 단순하면서도 기능이 다양하고 지역성이 강하다. 기본적으로 자연에 의존한 농사 방식을 추구했기에 연장들은 작고 단순하면서도 다양한 기능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전통 연장들 가운데 짚을 이용한 연장들은 꼼꼼한 수공업적 단계를 거치며 많은 품이 들었다.
이에 따라 농한기인 겨울철은 짚을 이용한 농기구들을 만들기에 주력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그 자연 친화성으로 인해 오늘날에도 각광을 받는 것들이 있다. 또한 수명이 끝나면 환경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짚으로 만든 농사 기구들를 알아본다.

 

▲ 도롱이
임금도 걸쳤던 도롱이

비가 오면 들인은 쉬기 마련이다. 그러나 모내기철 같은 바쁜 때에는 장대비가 내려도 들일을 해야 한다. 이처럼 비가 내리는 중에 사용하는 비옷이 도롱이이다.
도롱이를 걸치면 비를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체온 보존에도 좋았다. 짚으로 엮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는 겨울을 나는 방한복으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도롱이를 한자로 바꾸면 사의(蓑衣)인데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보면 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궁중에서도 임금과 여러 신하들에 이르기까지 사의를 사용했다. 요즘같은 우산이나 비옷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하사품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궁중에서 쓰는 사의가 꽤 많았으므로 나라에서는 해마다 단오가 되면 백성들에게 이를 만들어 바치도록 했다.

▲ 멍석.
풋굿 먹기 전에 짜는 멍석

농부들은 초벌 논매기, 두벌 매기, 세벌 매기가 끝나면 마을마다 잔치를 열고 풋굿을 먹었다. 이를 호미씻이라 하기도 한다.
이는 논매기를 끝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중요한 대목이었다. 이를 가리켜 ‘풀잔치’라는 뜻의 ‘초연(草宴)’이라고도 했으며 시기적으로 백중 무렵에 하기 때문에 ‘백중놀이’라고 하기도 했다.
지주들은 이날 만큼은 머슴이나 일꾼들에게 푸짐한 풋굿상을 차려 상전처럼 예우한다. 이 대 일꾼들은 “멍석 한닢씩은 떼야 풋굿 먹으러 가지” 하며 멍석을 짰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왜 여름철 그 바쁜 철에 멍석을 짰을까 하는 점이다. 하지만 짚의 성질을 알면 수긍이 간다. 짚은 건조하면 다루기가 어렵다. 겨울에 물을 뿌려가며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삼복 무렵이면 들일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덮지만 짚을 만지기에는 습도가 높아 더없이 좋았다.
촘촘하게 짠 멍석은 요즘은 실내에서 돗자리 대용으로도 사용한다. 습도 조절에 좋고 짚에서 발생하는 음이온으로 건강에도 좋아 비싼 값에 팔린다.

▲ 종다래끼.
씨앗을 담는 종다래끼

옛날에는 땅에 고랑과 이랑을 만들고 여기에 씨앗을 직접 뿌리는 직파법이 대부분이었다. 오늘의 고추 농사처럼 모종을 내는 방식은 거의 없었다.
이렇듯 씨를 밭에 직접 뿌리다 보니 씨앗을 담을 그릇이 필요했다. 이 때 사용하던 것이 종다래끼이다. 두 팔을 이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목에 걸 수 있게 만들었다.
짚을 구하기 어려운 산간지역에서는 고운오리버들이나 싸릿대, 혹은 인동덩굴을 이용해 올을 아주 촘촘하게 엮어서 만들었다. 그러나 대부분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짚으로 만들었다. 이를 지역에 따라 ‘봉생이’, ‘짚종드레’, ‘종들이’, ‘씨망태’, ‘씨삼태’ 등으로 불렀다.

▲ 씨망태
▲ 씨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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