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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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웅순 칼럼위원
  • 승인 2013.01.28 11:17
  • 호수 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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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님
▲ 신웅순 칼럼위원.

한국 전쟁이 쓸고 간 50~60년대는 누구나 살기가 어려운 시대였다. 자식들은 주렁주렁, 논 몇 마지기, 소작농으로는 중·고등학교 가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여자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일을 돌보았고 더러는 식모살이, 운 좋으면 공장으로 취직했다. 대학은 실력을 떠나 큰 부자 아니면 꿈을 꿀 수조차 없었다. 먼 옛날 이야기이다.


「손님」은 필자가 어렸을 적 50~60년대를 배경으로 쓴 자서전적인 동화이다.


손님이 오면 어머니는 항상 생일 때나 먹는 달걀을 쪄놓습니다. 나물도 이것저것 양념하여 한 상 차려 놓고 그렇게도 먹고 싶었던 돼지고기 찌개도 보글보글 끓여 놓습니다.
어느 날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어머니는 없는 반찬이지만 정성껏 차리셨습니다.
손님이 오시는 날은 생일 때나 먹는 그 귀한 달걀을 쪄놓습니다. 보리밥만 먹다가 그 날만은 흰쌀로 밥을 짓곤 했습니다. 뽀오얀 대접에 담긴 달걀의 하얀 흰자와 노른자의 깨끗한 색채, 맑은 유기그릇에 수북하게 퍼놓은 흰 쌀밥의 윤기.
정말로 소년은 먹고 싶었습니다. 손님의 움직이는 젓가락만 눈이 갔습니다. 반찬을 조금이라도 남겨주기를 바랐습니다. 어서 빨리 갔으면 좋겠습니다.
“얘야. 손님이 가신단다. 인사드려야지?”
야속했습니다. 손님은 맛있는 반찬을 다 먹어 치워버린 것입니다. 소년은 손님께 인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이 왜 인사를 하지 않았는지 모르셨을 것입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인사하지 않는다고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그날따라 소년의 어머니는 소년의 얼굴을 오랫동안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그리고는 부엌으로 들어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손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소년은 며칠이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가끔씩 오던 손님도 뚝 끊어졌습니다.
“엄마, 왜 손님이 안 오시지?”
“손님이 오면 좋아?”
“아, 아, 아아뇨.”
소년은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몇 달이 지났어도 손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참 이상하다. 올 때가 되었는데.”
소년은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산으로 들로 친구들하고 정신없이 쏘아 다녔습니다. 이제는 손님을 기다리지도 않았습니다.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어느 날 말쑥하게 차려 입은 낯선 손님 한 분이 아버지를 찾아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손님한테 지나치게 굽실거렸습니다. 어머니는 부엌을 바삐 왔다갔다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일부러 놀러가지 않았습니다. 동생들도 집에만 있는 것이었습니다. 눈치를 챈 모양입니다. 어머니는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렸습니다. 소년의 눈은 휘둥그레졌습니다. 그런 반찬은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귀한 손님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그런데 손님은 드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소년은 손님이 다 드시기를 기다렸습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방안에서 큰 소리가 몇 번 들려왔습니다. 이내 조용해졌습니다. 바쁘게 손님은 가신다고 했습니다. 행운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맛있는 반찬이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얘야, 인사드려야지?”
탁한 아버지의 목소리는 귀에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소년과 소년의 동생들은 벌써 입에다 음식을 가득 물고는 우물우물하는 것이었습니다. 금새  바닥이 난 것입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빈 접시를 오랫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부엌에서 혼자 눈물을 훔치시는 것이었습니다. 소년은 그런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른이 되기까지 소년은 그런 생각을 하며 열심히 공부만 했습니다.


쌀을 사야만 돈을 만질 수 있었던 어린 시절.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우르르 달려들어 허겁지겁 먹었을까. 아빠의 어린 시절을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알기나 할까. 옛날 얘기하면 고개라도 끄떡끄떡해주면 안 되는지, 아이들은 또 그런 소리 한다고 핀잔을 한다.


아침부터 겨울비가 내렸다. 낮에는 창가에서 깔깔대더니 어둠이 내리자 기척 없이 가버렸다. 빗소리를 방안으로 들여놓지 않아 그랬을까. 어머니도 그렇게 보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기일이 다가와서인지 갑자기 생각이 많아진다. 올해는 겨울비가 무슨 심술인지 내 그리움 옆에 어머니 외로움까지 놓고 간다. 그리움도 혼자 있으면 심심한지 겨울비가 그런 마음도 헤아릴 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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