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빕니다.
평화를 빕니다.
  • 이정아 칼럼위원
  • 승인 2013.07.29 15:17
  • 호수 67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화를 빕니다."
성당에서 미사가 끝날 무렵, 주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하는 말이다.


내 평화를 옆에 앉아있는 낯선 아저씨가 빌어주고, 얼굴만 알뿐 인사 한 번 나눠보지 못한 할머니의 평화를 내가 빌어준다. 참 이상하게도 말에 힘이 있는지 그 시간 이후엔 미사에 활기가 돌고 사람들은 미소를 짓고 있다. 나만의 평화가 아닌 타인의 평화를 비는 행위는 그래서 늘 기쁘고 활기차다.
하지만 평화란 깨질 때도 있는 법, 우린 그 모든 걸 알면서도 한결같이 평화를 빈다.


평화가 깨진 이후에는 그 깨짐 상태에서 실낱같은 평화를 찾으려 노력하고, 작은 불씨가  온 마음에 퍼져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설 해병대 캠프에 갔다가 숨진 공주 사대부고 학생들의 기사를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영정 사진 속 소년들의 맑은 눈빛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구명조끼도 입지 못한 채 바닷물 속에 빠져 구조를 외치던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차디찬 아들의 시신을 부여잡고 오열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나 역시 어미로서 그들의 슬픔에 가 닿을 수는 없지만 그 고통의 한 자락이 짐작은 가기 때문에…

사고 후, 예상대로 어른들의 잘못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도교육청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고양시키기 위해 매년 병영체험캠프를 지원 독려했다는 사실과 학교가 캠프 계약을 맺은 유스호스텔이 여행사와 다시 계약을 맺고 그 여행사는 또 다른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어, 아이들의 안전과 보호를 기댈 업체가 불투명했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있던 그 바닷가에 함께 짐을 꾸려 떠났던 교사들이 없었다는 사실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중, 고교시절, 좌향 좌와 우향 우를 헷갈리는 아이들은 체육교사의 몽둥이 찜질을 받아야 했다. “알았나?”로 끝나는 질문 아닌 명령에 어린 우리들은 겁에 질려 “넷!"하고 대답했었다. 소소한 잘못에도 폭력은 난무했지만 분노하기 전에 길들여졌었다. 권력 앞에 절대 복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각인시키던 우울한 시기였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돈을 주고 그런 체험을 하러 떠난다. 극기와 리더십, 협동심을 기르기 위한 필수 코스라고 한다. 군인의 모습을 한 교관은 호루라기 하나만으로 아이들을 제압하고 허약한 정신을 책망한다. 군사문화의 체험만이 우릴 강한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걸까? 무사히 살아남아 돌아오는 아이들 가슴엔 리더십과 협동심이 생겼을까?


 또한, 외부업체에 위탁한 체험활동에서 교사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본다. 최근에는 많은 체험활동들이 그러한 위탁 방식으로 진행됨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학교는 우리가 다니던 시절보다 더 많은 업체와 계약을 하고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지던 활동들이 이젠 위탁 업체가 중간에 들어섬으로서 교사는 그 책임에서 한결 벗어났겠지만 또 그만큼 학생과의 거리 역시 멀어져가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그날, 그 사고현장에  교사가 있었더라면,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분명 그랬을 거다. 교사들이 아이들 곁에 있었다면......


학교 합동 장례식장 앞에서 한 엄마가 주저앉아 울고 있는 사진을 보았다. 울고 있는 엄마 앞으로 돌에 새겨진 커다란 글씨가 보였다.
 ‘너 뜨거운 젊음아, 이 땅의 빛이어라, 가슴 열어 끌어안아라. 희망찬 세상을.....’
아이들은 떠나고, 아이들이 끌어안고 싶었던 세상은 그대로 남았다.


지금은 평화를 빌 시간. 빛이었던 그들이 편히 잠들기를,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이 다시 살아갈 힘을 되찾기를, 낯선 이의 이 말이 그들에게 전해져 다시 미소 지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사고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공주사대부고 학생들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친구를 잃고 슬픔에 빠진 아이들의 평화를 빈다. 그들의 평화를 위해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서, 미처 하지 못했던 일들을 후회하면서.
<작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